이미, 2002 한․일 월드컵대회 본선에 진출한 32개국에 희비를 안겨준, 때로는 재간동이가 되어 주인을 한없이 즐겁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게도 한다.
둥근 공은 90분의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감독과 선수 아니, 그 국가와 국민까지 평가하게 만드는 실로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기기만 한다면, 어떤 나라는 임원단 중에 주술사를 배치하여 주술의 힘을 빌릴 것이라는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기고 지는 것 여기에 너무 초점이 맞춰져있다.
이긴 팀이나 선수에게는 온갖 찬사가 붙지만 진 팀이나 선수에게는 가혹하리만큼 냉정한 것이 여론이다. 냉엄한 승부의 세계에서 승자가 칭찬받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최선을 다한 패자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야 한다. 패배하여 귀국하는 프랑스팀에게 꽃다발을 전해주는 어느 소녀의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한국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래서 히딩크 감독에게 ‘명예국적을 주자’ ‘계속 감독으로 영입하자’ ‘귀화시키자’ ‘명예경영학 박사학위를 주자’ ‘경영강의를 듣자’ 등 그에게 헤아리기 어려운 수식어가 따라다니고 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무어라 말했는가?
좋은 결과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선수들이 잘하고 있는 것도 그동안 피나는 노력과 훈련을 잘 견디었기에 오늘의 열매가 있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응원한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시선과 칭찬도 대단하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다 ‘붉은 악마’가 되고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은 ‘붉은 악마’로 불려진다. 심지어 4700만 국민 전체를 같은 응원단 이름으로 부른다. 이 무슨 해괴한 말인가?
악을 미화하는 응원단보다 1년 앞서 이미 기독교계에서는 지난 1996년부터 2002 한․일 월드컵대회 시점에 맞춰 기도하고 봉사해왔다. 어느 쪽의 성원이 더 중요한가 알아야 한다.
2002 한․일 월드컵 대회는 분명 세계 60억의 축제이고 공동주최국인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한국을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회 기간만 냄비 끓듯 하다가 갑자기 식어버리는 냉각현상이나 나타난 결과나 겉으로 드러난 것만 뒤좇는 단편적 상황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 과정이 있고 결과가 있고 결과와 과정을 통합하여 평가하고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삼을 수 있도록 마무리를 잘 할 수 있어야한다.
피버노바가 아무리 재간둥이라 해도 450g 바람주머니는 주인이 걷어찬 힘과 위치와 방향을 따라 앞으로 날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