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회노동조합 설립에 대하여』
이억주 목사(칼빈대학교 교수)
I. 시작하는 말
사회운동은 사회 현상의 투영 혹은 반작용이다. 기독교회노동조합(이하 교회노조라고 함)도 사회운동으로 볼 수 있으며 그런 관점에서 교회노조의 등장은 기독교회 문제의 표출 혹은 교회문제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본다. 그 같은 사실은 교회노조의 주장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동안 교회를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신앙공동체요, 하나님 나라의 지상적 개념으로 이해하던 교회공동체들에게는 교회노조의 등장이 당혹스럽고 황당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노조의 가. 불가의 논란 단계를 넘어서서 현실이 되었다. 인천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교회노조는 2004년4월29일 관계기관으로부터 교회노조 설립허가 신고필증을 교부받고 전국 지부 설치로 그 영역을 넓혀 나아가고 있으며 활동 또한 활발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교회들은 교회노조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일과성의 해프닝쯤으로 여기다가 지금은 교회노조에 돌을 던지기도 하고 잔뜩 긴장하기도 하며, 교회(복음전도와 교회 구성원들의 반응)와 교회조직(노회, 총회 등)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하여 다각도로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
최근 모 언론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교회노조에 대해서 반대하는 의견이 다수(약59%)이며 찬성은12%, 입장표명 유보가 2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교회노조가 내세우고 있는 표면적 이유가 교회노동자의 노동조건 혹은 처우개선과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 나아가 교회개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일을 성직 혹은 천직으로 알고 어려움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교회직원들과 교회공동체들의 눈에는 교회노조가 이질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반면에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교회노조의 등장을 반기는 이들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II.교회노조 등장 배경과 이해
II-1.교회노조 등장 배경
교회노조 등장의 배경은 몇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로 사회적 분위기 편승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사회는 기존의 질서를 바꾸어 보자는 심리가 만연되어 있다. 기존질서의 변화를 개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젊은 층에 많이 있다. 소위 인터넷 세대에 의한 선거혁명으로 정치권력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므로 젊은 세대들에게는 바꾸면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넘어서 자만심으로 차 있다. 젊은 세대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교회직원들도 교회의 기존질서에 대해서 자신들의 이해에 맞지 않는 요소는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사회법인 노동법을 택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둘째로 처우에 대한 불만이다. 교회직원도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댓가로 돈을 받으니 노동자인데 일반 사회 노동자의 대우와 비교해서 불만이라는 것이다.
셋째로 비인권적인 대우에 대한 자기 방어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한계가 있기에 단체의 힘을 빌리자는 것이다.
위와 같은 배경으로 하여 등장하게 된 교회노조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고 교회역사 2,000년에 초유의 일인데 한국교회는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 혹은 해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심각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II-2.교회노조 이해
교회노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먼저 제시해야 할 것은 과연 교회노조가 성경적인가? 하는 것이다. 교회노조측도 성경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다. 교회노조 설립의 주도자인 이길원 목사는 마태복음 20장 13에 “친구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평등의 원리를, 민수기 27장 7절을 근거로 하여 여성의 인권과 재산의 합당한 상속을 노동 문제의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성경 해석의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안종철박사는 “마태복음 본문은 노동문제가 초점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로의 초대(구원)는 인간의 합리적인 계산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다는 메시지다. 또 민수기 본문은 여성이 사람대접을 못 받던시대에 슬로브핫의 딸들(여성들)도 기업을 얻었다는 내용이다.”라고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노조는 성경적인 배경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현상적 혹은 시대상황적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사회적 혹은 노동운동적 이해인데 과연 교회를 노(勞)와 사(使)로 분류할 수 있는 조직체인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교회와 노동관련 정부기관의 해석이 전혀 다르다. 교회가 그동안 공유하고 있던 이해는 교회는 회사처럼 이익 창출을 위한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또는 교회의 직원은 성직이기 때문에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므로 교회노조는 당연히 불가하다는 인식들이다. 그러나 노동관련 주무기관의 해석은 교회직원도 노사관계에서처럼 계약적 관계로 본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급료를 받고, 또는 돈을 지불하고 노동력을 제공받는다면 노동행위에 해당되므로 노조가입이 가능하다는 해석이며 그 근거로 인해 교회노조설립을 허가 해준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정부 노동관련부서의 해석을 교회가 받아들이기에는 정서상 허락지 않는다. 먼저 교회는 이윤을 위해서 설립되고 운용되는 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교회의 설립자는 성삼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교회의 설립 목적은 죄인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거룩한 목표이지, 결코 기업의 이윤창출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또한 노동자가 있다면 사용주 즉 주인이 누구냐는 것이다. 교회노조측이 사용주로 정한 담임목사도 실은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고 성직에 봉사하는 위치에 있지 결코 주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노조의 주장대로라면, 교회공동체의 주체인 일반 교인들은 ‘그러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이냐? 돈을 내놓아서 이윤 창출의 주체이고 봉사자이며 교회노조 주장에 의무만 다하라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노조는 교회 정서상 인정될 수 없는 단체로 대부분 인식하고 있다.
III.교회노조 등장으로 발생되는 문제와 전망
교회노조의 활동으로 예상되는 문제점은 우선 부정적인 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도 사회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사회란 교회구성원들만 사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더 많은 불신자들이 교회를 또 다른 기업정도로 보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영혼구원이라는 목표를 하나의 이윤창출의 구실로 혹은 도구로 인식하게 되면 교회를 일반기업과 다를 바 없는 단체 즉 투쟁하여야 얻어낼 수 있고, 싸워야 바뀌는 곳으로 볼 것이다.
다음으로 교회내부의 갈등이다.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비직원 뿐만아니라 직원도 교회공동체의 일원이다. 그러나 직원들 스스로 노동자로 자처하면 지금까지의 화해와 이해, 사랑과 격려 그리고 협력관계보다는 투쟁과 반목의 대상으로 전락될 것이다. 이미 교회노조는 몇몇 교회를 상대로 노동쟁의에 돌입한 상태이다. (화곡동교회, 산성교회, 광양교회 등)
그런가하면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와 연대하여 교회를 대상으로 파업과 거리투쟁도 불사하게 될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또한 노사관계의 합의가 여의치 않으면 정부 공권력이 교회노동쟁의에 간여할 수도 있는 부끄러운 사태를 예견할 수 있다.
교회노조의 활동으로 교회는 당분간 얼마간의 상처를 입고 복음전도에 지장을 받겠으나, 교회노조는 결국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 근거는 먼저 성경적이지 못하며, 다음으로 교회구성원들이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 교회노조가 성공하지 못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어야 하는 것은, 교회노조가 주장하고, 존재 근거로 내세우는 문제들을 교회가 해결해야 된다고 본다. 그들의 주장근거가 안 되도록 교회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즉 교회 유급직원들이 교회공동체의 소속됨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IV.교회노조 해결 방안
교회노조의 설립이나 활동 그리고 방법이 비록 성경적이지 못하며 시대상황적이고 사회법적인 논리라고 해도 교회를 향한 문제점 지적에 대하여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당신들의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는 문제가 안 된다”는 식의 자기방어는 옳지 못하다. 성경은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 하리요”(베드로전서3:13)라고 하셨다.
교회노조는 설립자들에 의해서 스스로 폐기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몫이다.
교회노조 해결을 위한 네거티브 한 방안으로는,
❶임금노동자로 자처하는 이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교회는 그동안 사명감이 없는 이들에게 사명감으로 고통을 감내하게 하며 마지못해서라도 일을 감당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오해하였다. 이제는 사회법에서 정하는 정당한 임금을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임금노동자로 자처하는 이들에게 일을 맡기지 말 것이다.
❷교회는 인권침해사항도 은혜로? 혹은 관행으로 넘어가려하지 말고 오히려 교회직원들을 더욱 귀히 여기는 풍토를 가꾸어 나가야 한다.
❸노동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철저한 계약관계와 그리고 그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
다음 포지티브 한 방안으로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받들어서 교회노조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합당한 것이라면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결국 그들도 교회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본다. 물론 교회노조의 출발이 노동자의 권익보호라는 목표로 출발하여 교회 개혁의 본질과 맞지 않는 지나친 면이 있으나 (신학대학 및 신학대학원 정원 축소, 무인가 신학교 정비, 부목사 총회총대 일정 비율 요구, 당회원권 보장, 여성총대 일정비율 요구, 개척교회 보호를 위하여 대형교회 셔틀버스 운행 사법부 고발 등의 주장) 교회를 바르게 하고 교회답게 하라는 요구라면 그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V.맺는 말
한국교회노조의 등장은 교회개혁을 갈망하는 또 하나의 목소리라는 데에는 일견 동감할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한국교회를 상대로 한 교회노조는 교회사 미증유의 일이며 불행한 시대의 산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교회노조의 문제를 남의 탓으로만 돌려서는 해결이 어렵다. 교회노조 문제는 교회가 사회 변화에 둔감 했으며, 성경에 말씀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 행하기를 게을리 한 일에 대한 채찍으로 보아야 한다. 현재 한국교회는 뜻있는 이들에 의하여, 위기라고 진단된다. 그러나 진정한 위기는 위기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본다.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교회노조를 수용하느냐 거부하느냐가 아니라 교회가 개혁되느냐 이대로 안주하느냐 하는 실천의지에 달려있다는 제안으로, 교회노조 해결의 근본으로 삼아야 된다고 본다.
교회 유급직원들이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고, 교회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 혹은 사명의식보다는 노동자로 자처하며 노조라는 사회적 방법에 호소하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린 측면이 있다면 교회는 크게 반성해야 한다. 교회노조 활동을 무력화하는 것, 혹은 없애는 것이 교회의 당면한 과제가 아니라 교회노조가 등장하게 된 책임을 교회지도자들이 먼저 통감해야 한다.
현재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단체이다. 6만 교회와 기독교인 1,000만 명에, 국가 고위공직자 중 40% 이상, 대학의 학. 총장에 80%이상, NGO 대표 80%이상, 국회의원 299명 중에 121명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한국교회가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어떠한가를 말해 주는 단적인 수치라고 본다. 만약 이 같은 한국교회가 몰락한다면 그것은, 서구사회의 몰락이 기독교 문명의 몰락이라고 예견한 슈펭글러의 말처럼, 한국사회의 몰락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이 위기라면, 이 위기를 개혁으로 승화시켜서 오늘의 종교개혁을 이루어, 교회다운 교회를 세워가라는 하늘의 음성으로 들었으면 한다. 교회의 문제는 교회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무한 책임」으로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며 회개의 통곡이 있을 때에만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본다.
(이 글은 지난 11월 29일 국회도서관에서 「국가발전기독연구원」이 개최한 “국가발전을 위한 한국교회 사회적 책임은?”이라는 포럼중에서 “한국교회 노조 어떻게 볼 것인가?”의 토론내용을 일부 수정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