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규명과 국가의 정체성”
지난 8월 25일 노대통령이 독립유공자들과의 오찬에서 “과거 독립운동 시기, 선열들이 가졌던 이념과 사상이 어떤 평가를 받던 간에 역사는 역사인 만큼 있는 사실대로 밝혀져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서훈과 포상을 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즉 반쪽짜리 독립운동사에 대한 재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러시아, 중국, 국내 등 극동 지역에서 치열하게 대한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선조들이, 그 업적에 대해서 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 비극의 연장으로서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사회주의에 속했던 대부분의 선열들이 남․북한 모두에게서 외면 받아 온 사실이 더욱 그렇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평가와 포상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은 상당히 파급력이 있다. 정부는 물론, 정치권과 학자들 사이에도 논란이 크기 때문이다. 현행 보훈처가 가지고 있는 독립 유공자에 대한 포상 기준은 ‘광복 후 북한체제를 택해 김일성 정권의 수립과 침략행위를 도운 사람들은 제외 한다’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의 발언은 그 의도성과 함께 정부의 보훈정책에 대한 일관성 결여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는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의 침해에 대한 우려이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은 역사적․학문적 평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점이 있기에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둘째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사회주의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와 ‘포상’을 주창하는 것은 자칫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기존의 ‘인권’ ‘역사’ ‘이념’에 대한 결정에서 사회주의적인 파격을 보이고 있어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일면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훈처의 서훈이 무원칙적인 면이 있어서 지금까지 선별에 있어 혼란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와 같은 발언을 했다고 하는 것은 그 진위를 떠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생길 수 있다. 국민의 직선에 의해서 선출된 대통령이라도 헌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헌법 66조)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발언은 조심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아무리 독립에 공헌이 있는 인사라고 하여도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지 않고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의 체제와 어긋난 행태를 보여 왔다면 우리 정부가 굳이 나서서 포상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이념적 유아기를 벗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도 북한의 대남공산적화 기조는 변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평가는 하되, 훈․포장은 통일 이후로 미뤄도 된다고 본다.
그리고 정부가 직접 나서서 사회주의 독립유공자를 평가․포상한다고 하는 것도 정부의 어떤 의도대로 이끌어간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기에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고 본다. 전문가들이 조사․평가한 내용과 그들이 제청하는 형식에 따라 정부가 결정하는 것이 순서이며 공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지금까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서훈할 때 원칙들이 서 있었는지, 그것이 제대로 지켜졌는지를 면밀히 살펴서 문제점을 제거토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과거청산’이라는 어려운 작업을 하고 있다. 부끄러운 과거를 가볍게 털고 가겠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정체성 훼손이나 미래 발전적 저해 요소가 있는 것을 무리하게 적용시키려 해서도 곤란하다. 우리나라는 지금 통일국가도 아니고 이념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환경도 아니다. 우리 스스로를 지킬 역량과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면서 전진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