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북한 위협에 대하여
최근 한반도의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이는 직접적으로 지난 1월 17일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북한의 조선중앙 TV에 출연하여, ‘외세를 등에 업고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부정하고 대결의 길을 선택한 이상 우리(북한)의 혁명적 무장력은 그것을 짓부수기 위한 전면대결 태세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성명으로 시작된다.
북한은 휴전이후 50년 이상을 지켜온 북방한계선(NLL)을 일방적으로 폐기한다고 선언하고 저들이 주장하는 해상군사분계선만을 인정한다는 일방적 주장을 하고 있다. 이는 지난 1999년과 2002년의 서해해상 충돌 악몽을 연상케 된다. 이렇듯 북한의 느닷없는 ‘전쟁위협’이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요 며칠 사이에는 사거리 4,000Km 이상의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감지된다는 소식이다. 북한이 갑자기 강경하게 나오고 있는 태도의 배경에는 남한의 정권이 바뀌면서 대북 정책에 변화가 오고, 미국의 대통령이 바뀌어 한반도 정책 기조의 변화를 우려하면서, 북한 내부의 경제와 권력까지 복잡하게 작용하면서,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은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벼랑 끝 전술’과 ‘핵과 미사일 외교’방법을 되살려 낸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전면적 전쟁선포 위협에도 국민들은 크게 긴장하지 않는 것 같다. 그만큼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북한은 현재 한국 정부를 배제하고 미국과 가까워지려는 ‘통미봉남’ 중국에는 지하자원을 개방하고 한국에는 접근금지를 하고 있는 ‘통중봉남’ 등 한국에만 유독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극한적 대결 태도는 상습화된 전술로서, 옳지 못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를 통하여 엄청난 재정 지원을 받았다. 아마도 한국 정부의 도움이 없었다면 북한 정권은 무너졌으리라는 주장도 있었다. 지금도 한국을 통한 도움은 여전하다. 그런데 북한 당국은 남한을 통하여 실리(實利)는 모두 얻어가면서 남쪽을 향해 ‘전쟁의 공포’를 만들어 가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행위이다.
이제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하여 원칙과 유연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원칙만을 고집하면 경직되고, 유연성을 너무 발휘하면 주관이 없어진다. 원칙은 ‘상호주의’ ‘평화주의’ ‘합의존중’이다. 유연성이란 ‘생명과 평화’ ‘우선순위에 따른 조치와 지원’을 말한다.
혹자는 남한 정부의 원칙에 따른 경직성을 나무라지만, 북한도 변해야 한다. 무력과 무기로 협박하여 일시적인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전략으로는 남북관계 발전에 한계가 생긴다. 어느 사회 어느 국제 관계에서도 상호 호혜(互惠)를 무시해서는 좋은 관계를 얻기 어렵다.
이제는 북한이 남한을 전쟁 상대자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모든 분야에서 상호 협력하고 발전하는 관계로 만들어 가는데 노력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남한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북한에서 보인 전근대적인 대결적 자세로는 요원한 것이다.
남북 사이의 긴장 관계가 고조될수록 교회가 할일도 있다. 교회가 북한을 대하는 태도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정신의 사랑과 동족애에 따른 한결같은 행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는 인간의 제도와 이념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뤄달라는 요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