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 잃은 지상파 방송의 광우병 관련 보도
지난 4월 18일 정부가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에 대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상파 방송들은 쇠고기 문제에 대하여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보도에도 치중하지 않았다.
4월 10일부터 5월 1일까지 22일 간의 보도를 보면, 전체 보도 건수에서 차지하는 보도비율 평균은 KBS가 5.28%, MBC가 4.14%, SBS가 2.92% 정도였다. 그러다가 MBC가 4월 29일 ‘PD 수첩’을 통하여 미국의 광우병 문제를 보도하고 나서, 여론이 비등(沸騰)해지기 시작하자, 5월 2일부터 집중적인 보도가 시작되었다.
5월 2일부터 5월 10일까지 9일간의 보도비율 평균은 KBS가 26.49%, MBC가 30.67%, SBS가 27.87%로, 방송사에 따라, 앞에서의 보도보다 적게는 5배에서, 많게는 9.5배로 늘어날 만큼 높은 보도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결국, 방송의 보도비율 높이기 경쟁은, 한반도에 ‘광우 열병’에 불을 당기게 한 셈이다. 그렇다고 방송이 이 문제에 대하여 국민들이 정확히 판단하도록 도운 것도 아니다. 4월 10일부터 5월 10일까지 방송한 내용은 단순 보도가 179건으로 70.8%를 차지해, 문제를 파악하도록 돕는 심층 보도를 하기보다는, 대부분 단순 나열식으로 방송을 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전체 방송 보도된 253건 중에서 35건은 부정적 내용을 담고 있어, 방송이 부정적 여론을 만드는데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에도 각 방송사는 수시로 이와 관련된 내용을 방송하였고, 저녁 메인 뉴스에서조차 매일 15~20분씩을 할애하여 방송하면서, 촛불시위와 같은 선정적 내용을 빠트리지 않았다. 어떤 때는 마치 촛불시위를 중계방송 하듯 보여 주었다. 이런 면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도 민간 방송과 차별화 되지 않았다.
방송언론의 사명은 ‘사실 보도’와 함께 ‘정확성’에 있다. 더군다나 이번 경우처럼 광우병이 우려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한 것이라면, 심층보도를 통해 광우병의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최우선되어야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의 행태는 거리 시위에 초점을 맞춘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일본이 미국에서 수입하는 소에서, 변형 프리온이 2001년 발견됨으로, 2003년 수입을 중단하게 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던 것은 일본의 침착한 언론 때문이었다.
1986년 처음으로 광우병이 발견된 영국에서, BBC 방송은 사실과 과학에 기초한 보도를 하였다. 즉, 영국 언론은 국익을 위하면서도 사실에 대하여 과대포장하거나, 선정적 보도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는 평가이다. 반면에 우리 공영방송은 촛불시위와 같은 선정적 보도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 무척 대조적이다.
지금 우리는 촛불을 든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촛불 때문에 민심도, 경제도, 사회적 신뢰도, 국제적 약속도 함께 타들어 가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보다 냉정하고 정확하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언론의 역할은 여론의 쏠림 현상을 막고, 국민의 생각에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1인 언론처럼, 선정적 장면을 열거하는 식의 방송언론은 이미 공영방송의 자세가 아니다.
오히려 공영방송이 목적을 정해놓고, 국민들을 호도(糊塗)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게 만들고 있다.
쇠고기 파동의 이유는 단순히 ‘광우병’이라는 질병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풀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언론이 해야 할 것이며, 그 중에서도 공영방송이 해야 할 몫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촛불로 타들어 가고 있다. 이제는 촛불을 그만 끄고, 이성의 불을 밝힐 때이다. 이러한 때에 공영방송이 현 정권에 대한 피해의식만 갖고 대응할 것이 아니라, 중립적 위치에서 국민과 국가를 위하여 진정으로 취해야 할 태도가 무엇인가를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이제라도 언론방송 특히, 공영방송은 공정한 방송의 자리로 돌아와야 마땅하다. 그것이 역사의 심판을 무겁게 여길 줄 아는 책임 있는 행동이며, 기본 책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