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위, 오마이뉴스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 결정
‘인요한의 지리산 별장, 계속 유지될까’ 본질을 호도
진보 언론의 대표 주자인 오마이뉴스(대표 오연호)가 지난 해 12월 31일 “인요한의 지리산 별장, 계속 유지될까”라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이 보도는 1921년부터 1962년 사이에 미국의 남장로회 및 선교사들에 의하여 지리산 자락에 설립된 선교사들의 수양관이 마치 선교사의 후손인 인요한 박사의 개인 별장인 것처럼 비쳐지게 보도하였고, 특히 지리산의 기독교 선교사 유적지가 과연 문화재적 가치를 갖느냐 그렇지 못하냐의 본질적인 문제를 분석한 것이 아니라, 최근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으로 내정된 인요한 박사의 개인 소유이냐에 초점을 맞춰 그 본질을 호도하였다.
즉 독자적 입장에서 볼 때, 언론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가 아닌, 주관적 관점에서 역사적,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사안을 지나치게 특정 인물과 연관하여 기술하므로, 당사자로 거명된 개인이나 지리산의 선교사 유적지 보존을 위해 애쓰고 있는 보존단체에 피해가 발생하게 된 것을 인정하여 <정정보도>를 결정한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기사에서, ‘지리산 별장을 계속 유지해 활용하겠다는 특권적 발상에 불과하다’란 표현으로 정치적 관점을 지나치게 부각시켰다. 그러나 현재 지리산의 선교사 유적지는 그 지역의 교회들이 연합하여 지난 2007년 (사)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이하 보존연합)을 설립하고, 현재까지 그 보존과 문화재 지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보존연합(이사장 안금남 목사)에서는 오마이뉴스의 기사가 뜬 네이버에 의견을 제시하여,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과 보존연합에 피해를 끼쳤다는 것으로, 시정을 요구했으나, 이에 대한 시정이 이뤄지지 않자, 지난 1월 11일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된 것이다.
이에 언론중재위원회에서는 1월 24일 신청인(보존연합)과 피신청인(오마이뉴스) 간의 중재를 통해(사건번호: 2013서울조정37•38) 오마이뉴스 보도의 문제점을 인정하여 <정정보도>를 명령하였다.
이 결정에 따르면 오마이뉴스는 다음과 같이 <정정보도>를 하여야 한다.
「본지는 지난 2012년 12월 31일자 사회면에 “인요한의 지리산 별장, 계속 유지할까” 제하의 기사에서 지리산 왕시루봉에 위치한 선교사 건물이 인수위원회 인요한 부위원장 소유의 별장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고, 유적지 보존사업이 지리산 별장을 계속 유지해 활용하겠다는 특권적 발상에 불과하다는 취지의 내용을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지리산 건물은 인요한 부위원장 개인 별장이 아니며, (사)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편 (사)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 측은 ‘왕시루봉 선교사 유적 건물은 별장이 아니라 수양관 건물로, 한국의 토속건축자재를 이용한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 내용을 메인 화면에 48시간 동안 게재하고, 또 게재 후에도 기사 DB를 보관하여 검색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기독교 관련 보도는 날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그 보도에 대한 진정성과 사실 여부에 대한 것을 엄밀히 분석하고, 잘못된 경우 이를 시정하고 바로 잡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잘못된 보도는 결국 기독교에 대한 왜곡을 불러오고, 기독교 안티들이 비난의 소재로 삼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언론의 막강한 영향력과 함께, 언론에 대한 불만과 이에 따른 조정신청도 꾸준히 늘고 있는데, 언론중재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1981년에는 44건, 1986년에는 49건, 1991년에는 220건, 1996년에는 556건, 2001년에는 659건, 2006년에는 1,087건, 그리고 2011년에는 2,124건으로 그 횟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네이버 뉴스캐스트에 게재된 기사>
<오마이뉴스가 정정보도한 기사>
<참고>
(1) 경과-지리산 선교사 유적지 형성과정
한국은 1885년에 선교사들에 의하여 복음이 널리 증거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호남 지역은 주로 미국 남 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이 들어와 활동하였다. 선교사의 활동은 주로 학교, 병원, 교회를 세워 교육과 병든 자 치료, 그리고 복음 전파에 힘썼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한국의 풍토병에 취약했다. 당시 호남 지역에서만 60여명의 선교사가 풍토병에 의해 희생되었다. 특히 여름철의 수인성 전염병은 선교사를 더욱 괴롭혔다. 그리하여 미국 선교부의 요청에 의하여, 전염병균이 활동하기 어려운 해발 800M 이상의 지역에 수양관을 설립할 필요를 느껴, 1921년 지리산 노고단 지역에 수양관을 설립하게 되었다.
이곳에는 1930년대 60여동의 건물과 50여명의 직원이 근무할 정도였다. 또 이곳에서는 한글보급운동의 중요한 역할을 한 ‘성경번역’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런데 일제는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 대하여 ‘신사참배’를 강요하였고, 1935년 미국 남 장로교회는 ‘풀턴선언’(Fulton Declaration)을 통해, 신사참배를 거부하였고, 일제는 1937년 10여 개 학교를 폐쇄하기에 이른다. 이후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본국으로 돌아갔다.
해방 이후 선교사들의 복귀가 이뤄졌으나, 여•순 사건과 6•25전쟁으로 인하여 건물들은 대부분 파손되었다. 그리고 빨치산 토벌로 인하여 10여 년 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다. 그후 순천에서 결핵요양원을 하던 린튼(인휴) 선교사와 전주에서 성경학원을 하던 하퍼 선교사에 의하여 1962년부터 왕시루봉에 수양관 건축이 이뤄졌으나, 이곳이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시험림임을 알고(일제시대 일본 동경대 소유의 지리산이 해방 후 서울대로 소유권이 넘어감) 사과하고, 그 해 서울대와 사용 임대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1970년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린튼 선교사가 1984년 교통사고로 별세한 후, 그의 아들인 인요한 박사와 미국 남 장로회에서 관리하던 중, 2004년 서울대와의 계약 만료 후 방치되다가 여수, 순천, 구례, 광주 지역의 목회자들이 모여 기도하고, 지리산 선교사 수양관을 보존할 목적으로 2007년 사단법인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을 결성하게 되었다.
보존연합은 2010년 이 지역의 역사학적, 건축학적, 근대문화재적 가치를 평가하기 위하여 전문가적 용역보고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지리산 선교사 유적지는 그 누구의 개인 별장도 아니며, 개인의 이익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앞으로 이곳은 근대문화재로 지정되어 길이 보존되어야 마땅하다.
(2) 인요한 선교사
인요한(John Linton, 존 린턴, 1959년 12월 8일 ~ )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가정의학과 교수 겸 국제진료센터 소장이다. 미국 장로교 선교사인 외증조할아버지 유진 벨 시절부터 한국에서 의료 및 선교 사업을 하며 뿌리내린 집안에서 태어났다. 출생지는 전라북도 전주이며, 전라남도 순천에서 성장하였다.
인요한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린턴은 22세 때 한국에 와서 48년간 의료, 교육 선교 활동을 했다. 인요한의 아버지인 휴 린턴은 군산에서 태어나 전남의 도서지역에 600여 개의 교회를 개척했다.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인요한의 형인 스티브 린턴(인세반)은 '유진벨' 재단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인 소장 가족은 1895년부터 4대째 우리나라에 살면서 선교, 봉사활동, 북한결핵퇴치사업과 의료장비 지원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인요한 박사는 4대째 대를 이어 사회발전에 공헌한 것이 인정되어 훈장을 받았다. 그는 개정된 국적법 제7조 제1항 제2호(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자)에 의해 특별귀화허가를 받고, 2012년 3월 21일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다.<자료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