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희 조 사건과 언론 보도의 문제
지난 16일 미국의 버지니아 공대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경악케 했다. 더군다나 범인인 승희 조(미국식 표현: 조승희)가 한국인 1.5세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이에 대하여 한국 언론은 조 씨에 대한 많은 정보를 쏟아 붓듯이 보도하였다. 처음에 범인이 중국계라는 말이 나올 때만 해도 우리 언론들은 그렇게 흥분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17일 한국계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양상은 달라진 것이다.
17일자 보도(16일에 들어온 정보 분)에서는 중앙일보가 ‘미 대학의 최악의 총기 난사, 22명 사망’이라는 제목의 보도만을 1면에 짤막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범인이 한국계라는 것이 밝혀진 17일 이후에는 각 언론들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고 있다.
신문의 경우 일부언론만 보더라도, 중앙일보가 18일자에서 6개 면을 할애하여 보도하고 있다. 주요 보도 내용은 「미 총기난사 범인은 한인 1.5세 33명 사망 29명부상」「조씨 헤어진 여자 찾아다니다 범행」「조승희 누구」「넋잃은 미국」「유학 보낸 부모들」「한국인 피해우려」「한국도 충격」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고 있다.
조선일보도 같은 날 6개 지면을 할애하여 보도하고 있는데, 이날 주요 보도 제목은「보복테러 학교 가기 무섭다」「미, 전국 경악 주말까지 조기, 부시 오늘 추도식 참석」「국내, 믿겨지지 않는다 한미 외교에 악영향 걱정」「버지니아 총격범은 한국 교포학생」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한겨레도 18일자에서 6개 지면과 사설을 통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23살에 영주권자 33명 사망 15명부상」「청천벽력 교민사회 한국피해 없을까」「한미관계 FTA에 악영향 미칠까 초긴장」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가지 우려되는 부분을 보도하고 있다.
이후에도 각 신문은 24일까지 1주일 간, 적게는 3개 면에서 많게는 10개 면까지 매일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조 씨가 일으킨 사건에 대하여 보도하고 있다.
이 기간에 보도된 내용들의 제목을 보면 먼저 조 씨에 대한 것으로, 「계획된 다중 살인」「권총으로 32명 살해」「증오의 카드 3가지-소설, 종교, 게임」「전문의가 본 조승희 정신세계」「초․중․고 친구의 기억」「동영상(NBC) 강타」「올드보이(영화) 흉내」「침묵 속에서 증오 키웠다」「범인이 남긴 섬뜩한 희곡들」「오해는 총알보다 깊이 박힌다」「당신들이 빈 라덴처럼 내 인생에 9․11테러」「살인의 광기」「초등-친구 없는 수학천재, 중․고-발음 어눌」「대량 살상범, 속은 분노 끓어」「사회 향한 뒤틀린 분노 또 다른 총격」「조씨 범행도중 NBC에 선언문 동영상 보내」「자기 파탄이 공동체를 쐈다」「범행 1달 전 사격연습」등의 제목들이 사건의 비극을 전하고 있다.
다음은 가족 사항에 대해서도 보도하고 있는데,「조승희 가족 주변」「조승희 누나 사과성 성명 검토」「조승희 가족 사과성명」등으로 조 씨 가족에 대한 기사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교민이나 유학생에 대한 염려도 상당부분 보도하고 있다「얼어붙은 한인사회」「미, 유학열풍에 찬물」「한국계 학생들 신변위협 불안」「재미동포들 두려움 이유 있다」등으로 당장 교민사회에 큰 위기가 닥칠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반면에 사건 발생 2~3일 후부터는 위기를 극복하고 상처 치유를 위한 격려성 보도 내용도 있다.「우린 슬픔을 이겨낸다」「분노의 절제, 치유는 시작됐다」「우리가 먼저 승희에게 손 내밀었어야」「우리는 시련을 극복할 것이다」「네 탓 안 하는 미국」「이젠 상처치유 시작할 때」등의 보도가 그것이다.
이번 조 씨의 사건보도에서 우리 언론이 드러낸 문제점은,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서 상당히 많은 분량의 정보를 제공했으나, 조 씨의 생활 기록, 가족 사항, 범죄 구성에 대한 분석 보도, 방송에서의 그래픽에 의한 사건 재구성 등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모습들이 다소 비춰졌다는 것이다.
조 씨가 미국 NBC 방송에 보낸 동영상을 미국 방송이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18일부터 영상으로 여과 없이 보여준 것을 두고, 미 언론이 범인 손에 놀아났다고 비판하여 논란이 되었던 것처럼, 한국 언론들도 원칙 없는 보도를 하기는 마찬가지였다는 지적이다.
한국 언론들은 미국 언론들이 범인의 국적보다는 개인범죄에 무게를 두고 보도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조 씨가 한국계라는 것 때문에, 한인 피해에 대한 지나친 우려를 증폭시켰다는 지적이 그 하나이다. 이는 언론이 냉정하게 사건의 진실에 접근했다기보다 감성적 태도로 사건을 정확히 보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 사건을 일으킨 범인 조 씨에 대하여 국민들이 알고자하는 권리충족을 위해, 조 씨 주변 사람들의 개인의 신분노출, 희생자들의 초상, 그리고 범인의 폭력 제스처를 그대로 보도한 것이 선정적 보도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대학과 사회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여, 비극적 사건을 일으키고 스스로도 비극의 주인공이 된 조승희 씨의 총기난사 사건에서, 한국언론은 초기 보도에서 국민의 알권리와 엄정한 뉴스 선별 사이에서 균형 잡힌 보도보다는 초점을 잃은 선정성에 치우쳤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언론들이 사건의 핵심을 초기 단계에서 바로 읽지 못하여 일방에 치우치게 된다면, 모방범죄와 같은 악순환을 유발시킬 수 있고, 자칫하면 사건과 직접 관련도 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큰 사건이나 사회적 주의 사항이 요망되는 보도일수록 보도의 정확한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