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와 문화목회
현대 사회와 문화목회
추태화 안양대학교 신학대학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I. 들어가는 말
“현대 사회와 문화목회”라는 주제를 고찰할 때 두 개의 거대한 영역이 과제로 남겨진다. 하나는 현대 사회라는 분야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목회라는 분야이다. 현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기준이 요구된다. 예를 들면 문학, 역사, 철학 등의 기초인문학에서부터 사회학, 심리학, 정치학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라는 주제는 그만큼 폭넓고 다양하기에 여기서는 모두 다룰 수 없다. 다만 기독교와의 연관관계에서, 더 좁혀 말하자면 목회적 관점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서 현대 사회의 여러 측면을 살펴보려 한다.
원론적인 관점으로 먼저 시작한다면 목회적 관점을 이해하는 데 왜 현대 사회라는 분야가 필요한가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므로 목회의 대상이 되는 교인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또한 그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현대 사회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라는 개념은 그러므로 교회와 목회를 이해하고, 그들의 방향을 설정하는 하나의 길잡이가 된다. 사회 없는 교회 없고, 역사 없는 교인이 있을 수 없다.
사회가 동적일 때, 사회(Society)와 목회(Pastoral Works)간의 영향관계는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더구나 그 사회가 다양한 요인으로 변화하고 있다면 목회적 측면에서 이를 관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목회사회학(Pastoralsoziologie)은 목회와 사회변동에 관한 내용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종교와 사회”, “사회적 변화과정과 교회적 현상”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므로 목회사역을 위한 합리적이며, 비평-분석적인 관찰을 시도하게 한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목회를 사회학적 관점으로 보는 방법을 터부시 해왔다고 본다. 그러나 목회도 현실 상황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연관성이 있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므로 목회사회학으로부터 상당 부분 유익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G.Mueller(hrsg.), TRE(Berlin, New York: de Gruyter, 1996), Vol.26. 68.
이성희 목사는 이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사회 변동에 따른 목회 패러다임의 변혁은 교회의 필수적 과제이다.” “사회 변동과 교회 환경의 변화로 목회 패러다임의 변혁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이성희, 『미래목회 대예언』(서울:규장, 2002/10쇄), 7,11.
그런 의미에서 아래의 글은 현대 사회가 주는 변화 요인에 대한 목회 패러다임의 변혁을 주테마로 삼고 있다. 그동안 우리 나라에서 개최된 목회자 세미나는 교회성장학(Theory of Church Growth)을 중심으로 하였다. 설교와 전도도 교회성장의 관점에서, 평신도 교육도 교회성장의 관점에서 이뤄진 경향을 부인할 수 없다. 제자훈련, 팀목회, 셀목회, 소그룹 목회, 자연적 성장, 상담목회, 치유목회, 교육목회, 영성훈련, 은사운동 등등 수많은 목회 패러다임의 변혁들이 시도, 적용되어 나름대로 목적을 달성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목회(Cultural Ministry)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문화목화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인가? 아니면 그동안 존재했던 어떤 목회 방법의 변형인가? 아래에서는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목회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알아보고자 한다. 이 연구를 위하여 새들백교회와 윌로우크릭교회의 사례를 제시하므로 문화목회의 구체적 방법에 관해 접근해 보고자 한다.
II. 문화목회의 사회적 배경: 인간론을 중심으로
1. 포스트모더니즘과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은 한마디로 근대 시대(Modern Age)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시대적 부산물이다. 인류는 20세기까지 이성우월주의, 합리화, 역사낙관주의, 산업화, 자본주의, 과학만능주의, 배금사상 등으로 점철된 문명의 길을 걸어왔다. 계몽주의 이후 인간은 이성과 합리화를 최대한 활용한다면 『멋진 신세계』(A.Huxley)를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발전이라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인간의 또 다른 인간적인 것’을 상실해 왔다. 그것은 ‘이성의 도구화’가 불러온 냉혹한 결과였다. 이 때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등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생각의 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전도서에 기록된 “해아래 새로운 것은 없나니...”라는 구절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의 씨앗은 이미 인간의 문명 안에 내재하고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원형은 이미 고대 그리스사상, 신비주의, 점성술 등에 그 기원을 두면서 중세 신비주의, 낭만주의, 생철학, 자연철학 등의 여러 갈래의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주제에 관한 기독교적 조망으로는 다음 책을 참조, 신국원, 『포스트모더니즘』(IVP, 1999).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 동전이 양면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에게서도 이성과 감성은 상호보완적으로 존재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런 의미에서 이성에 대응하는 다른 차원의 운동이다. 이성을 앞세워 개발논리로만 치달았던 시대와 전통에 대한 저항이자 대안이 포스트모더니즘인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추구하는 분야가 이성에 대응하는 분야인 감성을 위주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인간은 합리주의 지배 하에서 병들어 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또다른 면, 즉 정신적이며 영적인 면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그것의 중심에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 초월적인 분야에 관심을 돌리게 된다. 심령과학과 정신세계의 대두가 그 예이다. 뉴에이지로 대변되는 이들은 UFO, 점성술, 명상, 요가, 초능력 등으로 다시 세분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개체의 자유와 해체를 내세우고 등장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현상이다. 이 사상은 탈중심, 탈역사, 탈관습, 탈권위, 탈가부장 등 종래의 역사적 흐름에 저항하는 성격을 띈다. 때로 과격한 면모를 내치면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대학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예수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등과 같은 슬로건을 내걸고 기존 사회의 헤게모니에 항거하기도 한다.
지금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는 것을 무엇보다도 잘 말해주는 현상은 퀴어문화(Queer)이다.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 (coming out)이 대표적이다. 예전같으면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내용을 이제는 공공연하게 표출한다. 이 현상은 심지어 교계에까지 나타나고 있다. 외국에서는 카톨릭 신부가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고백하는가 하면,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교회가 승낙하고 주례도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정치적으로 제3세계, 유색인,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들, 억압받는 자들, 그리고 여성들과 같이 경제적인 빈부의 격차와 가부장적인 사회구조로 인하여 억압받아온 사람들에게 흡인력있게 다가간다.
불확정성으로 성격화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문화의 다원주의를 공인하기에 이르렀고, 가치의 상대주의가 유포되도록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는 절대적인 복음 진리를 전파하는 기독교를 위협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기독교는 현대 사상에서 주변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Gene E. Veith, 『현대 사상과 문화의 이해』, 오수미 역(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1999/2쇄), 278.
목회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는 것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목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촉구하는 요소들 중에는 인간학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많다. 다음에 전개되는 항목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인간론(Anthropology)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인간론에서 말하는 인간존재를 규정하는 개념으로는 다음 몇 가지가 있다: 생각하는 인간(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 생물적 존재로서의 인간(호모 비올로기쿠스, homo biologicus), 경제적 존재로서의 인간(호모 이코노미쿠스, homo oeconomicus),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호모 폴리티쿠스, homo politicus), 도구적 인간(호모 파베르, homo faber), 기술적 인간(호모 테크니쿠스, homo technicus), 놀이적 존재(호모 루덴스, homo ludens), 종교적 인간(호모 렐리기오수스, homo religiosus).
2. 내면의 변화: 감성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생각하는 인간(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의 기능이 이성보다는 감성에 치우친다. 니체가 유럽문명 비판을 염두에 두고 쓴 『비극의 탄생』(Der Geburt der Tragödie)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인류 문명이 그동안 소크라테스, 플라톤으로 이어지는 사유의 체계로 인하여 이성의 지배를 받게 되어 인간 안에 내재해 있는 역동적 생명성(Vitality)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그는 아폴로로 대변되는 질서와 조화의 유럽 문화가 위기를 맞이했으며, 이를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황홀, 창조적 파괴, 술의 신으로 상징하는 디오니소스의 정신을 접맥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니체의 사상은 근대의 끝자락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생물적 존재로서의 인간(homo biologicus)은 그에 의하면 자신을 자각하는 몸(Body)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도 몸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몸이 원하는대로 하는 것이 곧 자아실현이요 운명이라고 한다. 니체의 몸의 철학은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대명제로 현대인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이런 사상으로부터 인간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접근법이 생기게 된다. 계몽주의적인 인간 이해는 사람을 지능지수(IQ)로 분류했으나, 이제는 감성지수(EQ)로 측정하려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감성지수는 아동 교육에서뿐 아니라, 사회 여러 영역에서, 그리고 목회 현장에까지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설교학에서는 전통적으로 활용되어 오던 대지중심의 교리적 설교가 구어체 스타일의 이야기(Narrative)적 기법을 참고하라는 권유를 지나치지 못한다. 위어스비(W.Wiersbe)의 『상상이 담긴 설교』 『이미지에 담긴 설교』등의 저서는 상상력(Imagination)과 이미지(Image)를 청중들에게 적극 활용할 것은 권유하고 있다. W.Wiersbe, 『상상이 담긴 설교: 마음의 화랑에 말씀을 그려라』, 이장우 역(서울: 요단, 1997/2쇄); 『이미지에 담긴 설교: 성경의 그림을 마음에 그려라』, 이장우 역(서울: 요단, 1997).
기독교 교육에서도 상상력과 이미지는 아동과 청소년 교육에 주요한 매체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목회와 EQ가 결합하여 “EQ목회”라는 신조어도 생겨나게 되므로 문화라는 영역이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옥한흠 외, 『IQ목회에서 EQ목회로의 전환』(기독신문사, 1998/3쇄). 여기서는 IQ목회와 EQ목회를 다음같은 대립항으로 이해하고 있다. 교회성장목회-문화목회, 일/프로그램중심-사람중심, 교역자중심-평신도중심, 중앙집권적 구조-팀/셀/소그룹, 전통예배-예배개혁, 예배당중심-지역파송/봉사, 하향식/수직적-수평적/관계중심, 관습고수-문화다양성 고려
3. 기술의 발달
인간 역사는 기술과 함께 발달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네그로폰테(Negrofonte)는 그의 저서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에서 앞으로의 문명이 디지털을 기반으로 급속히 변화하게 될 것을 예견하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미래사회는 가히 혁명적으로 뒤바뀔 것이란 예측이다. 토플러(A.Toffler)는 21세기에 정보지식사회가 도래하였음을 예언한다. 이제는 멀티미디어 시대로서 현대인들은 더 이상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다.
인간학에서 말하는 도구적 인간(homo faber), 기술적 인간(homo technicus)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게 된다. 인간은 기계로 생각하고, 기계로 자아정체성을 확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기계가 아니면 인간은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시대에 돌입하였으니 이는 인간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느껴진다. 최근 SF소설을 기초로 한 영화, 매트릭스, 아이로봇은 인간이 수퍼컴퓨터에 의해 지배당하게 되는 미래 사회의 위기감을 그리고 있다.
인간은 디지털과 사이버 공간의 확장으로 인하여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발견하고, 전자민주주의 등의 사회공동체적 발전을 가져왔지만, 기술로 인해 인간이 원자화, 고립화 되는 현상을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현대인들은 아날로그 시대를 지나 스스로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으로 변질되어가고 있지나 않은지 반성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4. 대중문화의 등장
인간의 속성 중 놀이적 존재(homo ludens)는 간과할 수 없는 개념이다. 호이징하는 같은 제목의 저서에서 인간 문명의 모든 기초에 이 놀이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호이징하, 『호모 루덴스』, 김윤수 역(서울: 까치, 1993).
대중문화 연구에 심혈을 기울인 R.윌리엄즈(Williams)에 의하면 대중적이란 말은 1)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 2) 열등한 작품들, 3) 사람들의 선호에 일부러 맞춘 작품들, 4) 사람들이 사실상 자신들을 위해 만들어낸 문화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부터 대중문화란 다양한 의미의 스펙트럼을 내포하고 있다. R.Williams, 1)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폭넓게 좋아하는 문화, 2) 고급문화라고 결정 된 것 이외의 문화현상, 3) 대량문화, 4) 대중으로부터 발생된 문화, 5) 헤게모니의 산물(그람시: 사회지배계층이 지적, 도덕적, 리더쉽을 통해 피비재계층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 6) 상업과 문화의 상호침투 작용의 결과, 7) 산업화, 도시화에 뒤따른 문화.
현대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대중문화는 자세히 관찰하면 순기능 외에도 간과할 수 없는 치명적 역기능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대중문화의 역기능적 속성으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지적받고 있다. 1) 상업성, 2) 선정성, 3) 폭력성, 4) 엽기성, 5) 키취(Kitsch), 6) 수동성, 7) 대중조작(Manipulation), 8) 대중문화의 저급화 경향과 시민의 건전한 비판의식 상실, 9) 문화제국주의, 우민화 정책 등.
5. 주 5일 근무제
2004년 7월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주 5일 근무제가 시작되어 생활 패턴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리프킨(J.Riffkin)은 『소유의 종말』에서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가 되었다고 분석한다. 다시 말해 생활에서 시간적, 물질적 여유를 획득한 사람들은 소유하기 보다는 접속하므로 더 많은 자유를 누리려 한다는 것이다.
접속의 시대에 사람들은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으로서의 선택을 자유롭게 하는 경향이 있다. 즉 종교다원주의가 사회에 만연하므로 사람들은 종교도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고르듯 자신이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주 5일 근무제는 노동자들의 직장과 개인 생활, 그리고 소비 패턴 등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 구조와 인간 관계를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 점 역시 기독교계가 간과해서는 안될 환경 변화의 요인이 된다. 주 5일 근무제에 관한 논의는 제2편 6장을 참조.
III. 문화와 한국 교회: 논쟁점
1. 한국 기독교 문화의 취약성
현재 한국 교회는 여러 면에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기독교가 사회적 리더십을 잃어간다는 자성의 목소리와 비례한다. 그 중 하나가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영재, 『한국 기독교의 재인식』(서울: 엠마오, 1994),, 59.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의 저변에는 문화에 관여하는 국민교회나 지역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하는 교회가 없다. 문화에 보다 관심을 가진 진보적인 교회가 있기는 하지만 소수이다. 교회의 문화적인 역할과 기여를 두고 생각할 때 이것이 바로 우리 한국 교회의 구조적인 현실이다.”
1970년대까지 한국 사회를 이끌어온 기독교계가 어떤 이유로 리더십을 잃어간다는 것인가. 이는 기독교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보다 더 활발히 전개되지 못한 이유와 관계가 있다.
첫째, 교회론의 입장에서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복음선포 위주의 교회운동, 2) 타종교와의 관계에서 정체성 확립 (긴장감, 대립, 자기확립), 3) 예배중심적 집회에서 그 원인을 들수 있겠다. 이는 신자들이 거하고 있는 삶의 정황의 다양성을 인정하기 보다 예배당 중심적 집회가 주된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평신도들이 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위의 책, 54-55, 60. 릭 워렉목사가 시도한 교회의 유형에 의하자면 한국교회는 영혼 구원형 교회(The Soul Winning Church)이다. 이런 교회에서는 전도 이외의 것은 언제든지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릭 워렌, 『새들백교회 이야기』(The Purpose Driven Church), 김현희, 박경범 역(디모데, 1996/2쇄). 139-140.
둘째, 목회자 입장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 교회는 성장지향적이며, 개인관계 중심적이어서 심방을 위주로 교회가 성장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목회자들도 역시 교회성장에 매여있어서 문화활동을 하기에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셋째, 평신도 입장에서도 문화적 취약성에 대한 윈인을 발견할 수 있다. 선민사상으로 세상문화와 과도한 거리를 둔 것이 그 대표적인 원인이며, 전도와 선교에만 전적으로 집중하는 것도 그 원인이다. 위의 책, 60.
또한 평신도들이 행하는 교회활동에 성경공부 중심의 이지적 활동이 과도하고, 이성 위주의 신앙생활에서 오는 문화 체험과 인식 결여가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교육되는 과도한 인지적 활동이 학교위기, 교실위기를 불러왔듯이 교회에서도 이성 중심의 신앙생활이 위기를 몰고 왔다는 것이다. 릭 워렌은 이를 “교실교회”라고 부른다.
주지주의(Intellectualism)적 교육이 낳은 폐해라 해야할 것이다.
그러한 결과 한국에 형성된 기독교 문화는 니버의 문화유형으로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대별할 수 있겠다. 니버의 5가지 문화유형: 1) 문화에 대항하는 그리스도(Christ against Culture), 2) 문화의 그리스도(Christ of Culture), 3) 문화 위의 그리스도(Christ above Culture), 4) 역설적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와 문화 (Christ & Culture in Paradox), 5)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Christ the Transformer of Culture)
한 가지는 “문화에 대항하는 그리스도” 유형과 다른 한 가지는 “역설적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와 문화”의 유형이다. 전자가 일반문화에 거리를 두는 이원론적 문화관이라면, 후자는 일반문화와 기독교 문화 사이를 오가며 갈등하는 문화관이다. 두 경우 모두 진취적이며 창조적인 기독교 문화를 형성하는데 약점이 있다. 니버가 분류한 다섯 번째는 “문화의 변혁자로서 그리스도” 유형인데 한국 기독교는 이 관점을 더욱 수용하고 전개해 나가도록 문화운동을 펼쳐야 할 것이다. 이 방법이 한국 교계가 문화변혁자로서 역동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된다.
2. 한국 교회의 문화수용의 이중성 극복
위에서 언급한대로 한국 기독교는 그동안 교회와 사회의 이원화가 심화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 이유를 다음 세 가지로 설명해 본다.
첫째, 역사성의 결여이다. 한국 기독교인의 특징 중 하나는 체험적이며 신비적이라는 데 있다. 개화기와 일제시대, 그리고 전쟁의 상처 속에서 신앙을 의존하며 살아오다 보니 기독교인의 내면에는 생존과 결합된 기복종교적인 요소가 가미되게 되어 역사의식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 결과 사회 책임보다는 개인적 범주의 평안과 복에 대한 경도가 심화되고, 역사와 사회 현실에 책임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현실참여적인 성격이 취약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한국 기독교가 시인해야 할 점은 세계관이 빈약하다는 것이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현실 참여보다는 기복적 경향에 이끌린 결과 건강하고 진지한 기독교 사상과 철학의 훈련이 미비했던 것이 사실이다.
둘째, 문화성의 결여이다. 한국 기독교가 형성한 기독교 문화는 전적으로 교회적 영역에서 인정받고 있다해야 할 것이다. 일반사회와 교류하고, 그들을 감화시킬 수 있는 기독교 문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 기독교는 그동안 전도와 선교라는 공격적 복음 전파를 중심으로 활동해왔기에 문화에 관심을 둘 수 없었다. 그 결과 교회와 사회적 활동 간의 괴리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김영재, 위의 책,
셋째, 현실성의 결여이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활동적인 복음 전파를 통해 교회를 성장시켰다. 그러나 교리적으로 보자면 한국 교인들은 편식했다고 지적할 수 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교리는 주로 죄와 구원에 관한 것이었다. 즉 구원 이전의 삶에서부터 구원까지가 설교의 주요 내용이었던 것이다. 구원 이후에 펼쳐지는 교인들의 구체적 삶의 방법은 등한시 하게 되고, 복음에 합당한 삶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제시되지 못해서 한국 교인들은 자립적인 신앙생활보다는 교역자에 의존하는 신앙생활을 보여왔다. 종말론에 대한 과도한 관심 또한 한국 교인들이 남긴 신앙의 편식성을 말해 준다. 현대에 와서 이단 사이비들이 적지 아니 출현하게 된 것은 대체로 종말론에 대한 곡해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이들 요소들은 기독교가 비교인들(The Unchurched)의 사회적 요구와 필요를 외면한 듯 보였다. 교회가 사회를 이끌어 갔던 시대를 다시 회복하려면 교회의 문화적 경쟁력이 한층 강화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교인들만의 예배공동체로 만족하고 안주할 것이 아니라, 비교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을 향해 복음을 실천해 나가는 문화공동체로서의 역할도 감당해야 한다. 김영재, 같은 책, 61. “교회는 문화에 무관심한 채로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영적인 생동성만 추구해서도 안되고 구령사업과 영적인 생동성의 추구를 소홀한 채로 문화에만 관심을 기울여도 안되기 때문이다. 사회와 문화 속에 사는 교회가 현세의 윤리적인 삶과 문화에 무관심하여서는 폐쇄적이며 바리새적인 종교 집단이 될 뿐이며, 구령사업을 소홀히 하거나 영적인 생동성을 잃어서는 문화를 변혁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하게 되어 세속적인 문화에 그냥 동화될 뿐이다.”
IV. 문화목회 방법론: 사례연구로부터
A. 사례연구
문화목회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부흥한 교회로 새들백교회(Saddleback Church)와 윌로우크릭교회(Willow Creek Community Church)를 소개한다. 두 교회는 각각 레이크 포리스트/캘리포니아와 시카고/일리노이스에 자리하고 있어, 위치에 따른 지역적 성격과 분위기 등이 상이하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지역민에게 문화적 포용력과 관심을 가지고 접근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새들백교회는 릭 워렌(Rick Warren) 목사가 1980년에 개척하여 현재 10,000명 이상의 교인이 모이고, 윌로우크릭교회는 빌 하이벨스(Bill Hybels) 목사가 1981년에 개척하여 현재 15,000명의 성도가 모이는 미국의 대표적인 교회로 성장했다. 교회 사이트를 참고. 새들백교회(http://www.saddleback.org).
윌로우크릭교회(http://www.willowcreek.org).
다음에 소개되는 글은 릭 워렌 목사가 지은 『새들백교회 이야기』(The Purpose Driven Church)과 빌 하이벨스 목사와 그 부인이 지은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 스토리와 비전』에서 인용한 것이다. 두 교회가 본 연구의 주제인 문화목회 방법론을 어떻게 수용하고 활용하였는지 구체적인 표현들을 통해 확인해 보고자 한다.
1. 새들백교회 Rick Warren, 『새들백교회 이야기』(The Purpose Driven Church), 김현희, 박경범 역(디모데, 1996/2쇄). 인용된 문장 뒤에 주어진 번호는 책의 페이지를 가리킴.
- “나는 하나님이 나의 남은 생애를 건강하게 성장하는 교회를 만들어 내는 원리들 -성경적, 문화적, 그리고 지도력에 관한 원리들-을 찾는 일에 바치도록 이끄심을 느꼈다.”(41)
- “교회를 성장시키는 데에는 헌신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기술(Skill)도 있어야 한다.”(71)
- “각각의 인종 집단은 그들 고유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전략을 요구한다.”(181)
- “당신의 교회는 지역별, 인구분포별, 문화적 그리고 영적인 네 개의 구체적 측면에서 대상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183)
- “대상을 문화적으로 규정하라... 교회성장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인맹(人盲)이다. 즉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문화적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문화나 의식 구조, 생활 방식 등을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과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188-189)
- “당신의 교회가 가장 잘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은 당신의 교회에 이미 기존하는 문화와 맞는 사람들이다.”(198)
- “당신의 교회가 세울 수 있는 가능성 있는 목표는, 당신의 지역 사회에 있는 이처럼 복음에 수용적인 태도를 가진 각 그룹의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전도 행사 등을 개발하는 것이다.”(208)
-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것에 적응하라”(221)
- “복음은 언제나 어떤 문화를 통해 전달된다.”(222)
- “당신이 그들의 문화 속에 파고들어야 한다.”(223)
- “성장하는 교회들은 다양한 프로그램, 다양한 예배, 그리고 어떨 때는 다양한 위치까지 제공한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선 온갖 종류의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제리 화렐은 이것을 ‘총체적 전도’(Saturation Evangelism)라고 부른다. 가능한 모든 시간에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가능한 모든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총체적 전도다.”(228)
- “사람들이 절실히 느끼고 있는 필요를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새들백에는 군중과 지역을 향한 70가지가 넘는 사역이 있는데 이 모두가 다 구체적인 필요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다.”(251)
- “예수님은 재미있는 방법으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261)
- “문화에 대한 반응: 모방인가, 격리인가, 침투인가?”(266)
- “구도자에게 민감한 예배”(Seeker-sensitive Service)(283)
2. 윌로우크릭교회 Lyann & Bill Hybels,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 김성웅 역(두란노, 2003/11쇄).
- “비종교적인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한 제자로 전환시키는 윌로우크릭교회의 7단계 전략”(126)
- “교회들이 그 이웃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도 사역을 하도록 부르고 구비시킨다. 즉 교단적, 문화적 장애 사이에 다리를 놓아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함으로써 새로운 사역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며, 대도시 사역을 위해 지역 사회와의 공조를 강화한다.”(255)
- “우리 지역 사회 내에 살고 있는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또 우리에게 가장 잘 맞는 비전과 사명 그리고 전략들로 이끄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려고 애썼다.”(272)
- “단계 3: 구도자만을 위해 마련된 예배에 초대한다.”(316)
- “우리의 접근 방법 역시 비슷하다. 그렇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현대적인 접근 방법이었다. 빌리 그레이엄이 더 일찍 시작한 데 비해 우리는 70년대 중반에 시작했기 때문에, 그리고 전혀 다른 세대 사람들을 표적으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변화된 상황에 맞는 접근법을 사용했다. 현대 기독교 음악, 드라마, 멀티미디어, 비디오 그리고 춤이다.”(320)
- “우리는 교회가 교리적인 순수성을 유지하면서도 문화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지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342)
- “질문5.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현대적인 예술과 언어를 사용하다 보면 복음의 내용이 약간 변질되는 게 아닐까?”(375)
B. 전제조건
아래에 제시되는 다섯 가지 조건은 위에서 논의된 두 교회의 특징 가운데서 문화목회를 적용해 나가는데 요구되는 내용 중 공통적인 부분을 모은 것이다. 문화목회는 기존의 목회방법을 기초로 하되, 시대적 환경와 분위기를 고려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하겠다. 문화목회를 실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다섯 가지 조건을 새들백교회와 윌로우크릭교회의 예를 들어 생각해 본다.
1. 목회자의 인식 전환
위에서 관찰한 것같이 두 교회는 모두 지역 사회와 지역민에 대한 인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교회가 위치한 지역이 대도시였기에 도시인들의 현실적, 내적 욕구와 문화적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했으며, 그들이 기독교와 교회에 대하여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지도 구체적으로 알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릭 워렌 목사는 지역 사회와 지역인이 교회에 대하여 갖고 있는 의식 조사를 기초로 구도자를 위한 예배를 준비하였다. 그는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취해야 할 태도를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문화적 전쟁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죽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릭 웨렌, 위의 책, 29.
이 점에 관해서 윌로우크릭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도 같은 의견이다. 그는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완전히 헌신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바꾸는 것이 교회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비종교적인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헌신된 제자로 삼기를 원한다.” 빌 하이벨스, 위의 책, 310.
한국 교회는 권위주의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아직도 들려오고 있는 것을 보면 문화적으로 더 많은 훈련을 쌓아야 한다. 릭 워렌목사는 교역자가 시대에 융통성을 발휘하고 시대와 문화의 코드를 읽을 줄 아는 세련미를 소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화를 활용할 줄 아는 감각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은 방법을 계속 사용하는 교회는 그리스도께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위의 책, 81.
그는 과거의 고답적인 방법만을 고집하지 말고 목회의 효율성을 높이라고 권유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것의 개발자가 되도록 부르신 것이 아니라 효과적이 되라고 부르신 것이다.” 위의 책, 82.
빌 하이벨스목사는 목회를 통해 자신이 도달해야 할 목적을 확실히 주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성경적으로 움직이는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었다. 위의 책, 371.
뚜렷한 목표 다음에 그는 이렇게 질문한다. 그렇다면 ‘누가’ 성경적인 공동체를 세울 것인가? 인물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것은 로마서 12장 8절로 구체화 된다. 하이벨스목사는 자신의 다음 목표가 “교회의 지도자”들을 세우는 것이라는데 도달한다. 위의 책, 274. 하이벨스목사가 발견한 교회지도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다음 8가지로 요약된다. 1. 지도자는 비전을 제시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2. 지도자는 사람들을 뭉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3.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동기를 부여한다. 4. 지도자는 긍정적인 변화의 필요를 알아채고, 그 변화를 이끌어낸다. 5. 지도자는 핵심적인 가치를 세운다. 6. 지도자는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한다. 7. 지도자는 엔트로피를 규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8. 지도자는 지도자 문화를 창출하고 싶어한다. 274-283.
그는 윌로우크릭교회의 비전을 통해 분명한 목회철학을 실행해 나갔다. 하이벨스목사는 성경적 공동체를 통해 “비종교적인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헌신된 제자로 삼기를 원했다.” 위의 책, 310.
교회의 세상에 대한 태도에 관해 거론하는 글들은 과거에는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주로 이렇게 외쳤다고 지적한다. “와, 보라.” 부연하자면 세상을 향하여 일방적인 선포를 가했다는 말이다. 세상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하지 않은 결과 교회의 리더십이 약화되었다고 한다. 이제 교회는 “가라”(마 28:18-20)는 주의 명령을 따라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주의 명령으로서 “가라”는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막 16:15, 눅 24:47-49, 요 20:21, 행 1:8.
2. 이웃과 환경에 대한 열린 자세
현대는 과학기술로 인한 정보통신망의 확산으로 쌍방향 의사소통(Interactive Communication)의 시대가 되었다.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현대 사회는 어느 누가 정보를 독점할 수도 없고, 일방적인 메시지만을 강요할 수 없는 시대이다. 더구나 인권을 앞세워 권위를 해체해 가며, 협상과 대화를 상호간의 의견 조율에 주요한 방법으로 교육받고 있는 시대에 종교적 진리라 할지라도 가슴에 호소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교회가 세상에 타협한다고 여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주 예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성육신(Incarnation)은 그 모범을 보이셨다. 주는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자신을 낮추시고” 사람들에게 다가가셨던 것이다(참고, 빌 2:6-11).
워렉목사는 그가 목회를 시작할 때부터 지역 사회를 연구하고, 지역민들을 탐방하면서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청취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는 지역사회(The Community)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당신이 속한 지역 사회는 전도의 목적이 나타나는 곳이다.” 릭 워렌, 위의 책, 149.
새들백교회는 “지역사회의 영적 수용성을 파악하기” 위의 책, 206.
위하여 노력했고, 그 결과 새들백비전에 합당한 목적을 목회 방향에 적용할 수 있었다. 워렌목사는 지역사회와 교회 사이에 의사소통과 관련되어 깊은 오해가 있었던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전도의 문이 막히게 된 이유가 복음의 능력이나 교인의 전도방법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거부 현상은 잘못된 의사전달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위의 책, 215.
그는 이렇게 강변한다. “교회들은 사람들이 복음에 닫혀 있다는 말을 멈추고 불신자들의 주파수에 맞춰 의사 소통하는 법을 찾기 시작해야 한다.” 위의 책, 215.
그리고 고기를 잡는 어부가 되기 위해서는 고기가 무는 곳으로 가야 하며, “고기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우라”고 권고한다. 문화목회는 워렌목사의 표현을 빌자면 고기를 잡으려 할 때 고기가 생각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위의 책, 212 f.
빌 하이벨스목사의 경우, 그 역시 지역민에 대한 방문 조사를 행했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조사의 목적은 지역 주민들의 영적 필요를 인식하고 채우려는 목표 이상이었다. 빌 하이벨스, 위의 책, 371-372.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에만 기초한 교회를 세워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비종교적인 사람들을 변화시켜 그리스도에게 헌신된 제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점진적인 단계를 거쳐야했다. 그 첫 번째 단계가 “불신자와 진실한 관계를 맺는다”이다. 위의 책, 311.
종교를 멀리하는 불신자들이라도 ‘진실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를 찾는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이벨스목사는 이 일을 위하여 교인들을 “전염성 있는 그리스도인 되기”(Becoming a Contagious Christian) 훈련과정으로 인도하였다. 이를 “7단계 전략”이라고 부른다. 7단계 전략. 단계 1. 불신자와 진실한 관계를 맺는다. 단계 2. 말로서 전도한다. 단계 3. 구도자만을 위해 마련된 예배에 초대한다. 단계 4. 신자들을 위한 예배에 정기적으로 출석한다. 단계 5. 소그룹에 참여한다. 단계 6. 자신의 영적인 은사를 발견, 게발 그리고 전개시킨다. 단계 7.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당신의 자원을 관리하라. 311-334.
구도자들을 향하여 시각이 부드럽게 변해야 전도가 시작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3. 평신도의 능동적 참여
새들백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사람들을 불러 사역자로 훈련시키고 세상으로 다시 파송하는 평생개발 과정을 야구에 비유한다. 홈은 101(사명에의 헌신)로 불리며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등록 교인이 되게”한다. 1루는 201(교인에의 헌신)로 불리며 “영적으로 성숙하도록 성장”시킨다. 2루는 301(성숙에의 헌신)로 불리며 “사역을 하는 필요한 기술을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3루는 401(사역에의 헌신)로 불리며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한 세계 선교에 사람들을 참여시킨다.” 릭 워렌, 위의 책, 164.
윌로우크릭교회는 구성원들이 교인(Church Members)로 남는 것을 방관하지 않는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가족이 된 사람들을 “명목적 지체”(Positional Members)라 하여 구분하고, 다음으로 지역 공동체에 “참여하는 지체”(Participating Members)가 됨으로써 성장을 계속해 나가도록 지원하고 있다. 빌 하이벨스, 위의 책, 363.
이들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교회는 의식과 제도를 활용한다. 이를 5G(Five Gs)라고 부른다. 위의 책. 1) 은혜에 대한 반응(Grace), 2) 예수 그리스도께 순응하는 방향으로의 성장(Growth), 3) 삶을 변혁시키는 소그룹(Group) 신앙 체험 사역에 대한 복종, 4) 영적 은사(Gifts)의 개발과 활용, 5) 선한 청지지(Good Stewardship)가 되겠다는 헌신.
하이벨스목사는 참여하는 지체들을 “팀 사역”으로 재구성한다. 위의 책, 318.
비종교인들을 교회로 인도하고 나서 교인들이 합력하여 하는 일은 그들을 구도자 예배에 초청하여 복음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구성된 팀은 각각의 역할을 수행해 나가게 된다. 다음으로는 그들과 함께 소그룹에 참여한다.
4. 영적인 집단역동성
현대 사회는 알게 모르게 영적으로 나태와 권태에 빠지도록 유혹한다. 육신적인 가치관은 세상적인 조류를 타고 교회와 교인들에게 밀어닥친다. 그리하여 매순간 의로운 선택이라는 부담을 지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영적 상태는 급박하다. 영적 부흥을 원한다면 성령의 충만에 몸을 맡겨야 한다. 릭 워렌목사는 이를 파도타기에 비유한다. “교회의 지도자로서 우리들이 해야할 일은 마치 능숙한 파도타기 선수처럼, 성령의 파도를 식별하여 그것을 타는 것이다.” 릭 워렌, 위의 책, 22.
그는 성령의 파도를 타고 성장을 하게 되면서 때로는 기존의 파도에서 내려와 다른 파도를 타는 균형감각도 놓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위의 책, 23.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파도를 식별하기 위해 애써 왔고 또 그 파도를 타는 법을 배웠고, 또한 균형의 중요성도 배웠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하라고 명하시는 것을 느낄 때마다 스러져가는 파도에서 내려오는 법을 배웠다.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다. 우리가 성장의 파도를 타는 법에 익숙해질수록 더 많은 파도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다는 것이다.”
워렌목사는 1980년 3월에 행한 새들백교회의 첫 번째 설교에서 새들백비전이라는 주제를 공개한다. 그 중에서 영적 은사의 개발은 중요한 위치에 있다. “우리의 꿈은 모든 교인을 훈련시켜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사와 재능을 발견케 하여 중요한 사역을 감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위의 책, 56.
그는 영적 역동성이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영적 성숙을 성숙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생각하는 잘못된 신화를 무너뜨렸다. 성숙은 사역을 위한 것이다.” 위의 책, 159-160.
워렌목사는 목적을 위한 목적으로 전락하는 유혹을 지적하기 위해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프로그램으로 교회를 성장시키려고 하지 말고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키우는 일에 주력하라.” 위의 책, 126.
소그룹은 이 과정의 한 부분이다. 위의 책, 365. “모든 교인들에게 소그룹에 소속될 것을 권장하라.”
윌로우크릭교회의 경우 5G에서 3번(삶을 변혁시키는 소그룹 신앙체험 사역에 대한 복종)과 4번(영적 은사의 개발과 활용)이 여기에 해당된다. 소그룹은 마치 힘차게 움직이는 군대로 비유된다. 그것은 “동지애가 흠씬 묻어나오는 소대(小隊)”와 같다. 위의 책, 325. 그는 역동적 소그룹을 이렇게 표현한다. “소그룹은 바로 그런 곳이다. 충심과 측은히 여기는 마음, 헌신과 돌봄, 기도와 서로 희생하는 마음이 표시되는 곳이다. 동지애가 흠씬 묻어나오는 소대, 그 안에서 서로 삶을 나누고 자신의 약점과 두려움을 드러내는 곳, 상담과 격려를 구하고 서로를 서로가 감독하며 함께 영적으로 자라는 장소, 유별난 사랑을 주고 받는 곳이다. 예수님께서 소수의, 서로 몸을 부비고 부딪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셨음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325-326.
하이벨스목사는 비전을 이렇게 말한다. 윌로우크릭교회는 소그룹을 갖고 있는 교회가 아니라, 소그룹들이 모인 교회가 윌로우크릭교회가 되길 바란다고. 위의 책, 327.
5. 문화예술의 활용
새들백교회는 지역 주민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그들을 복음과 접촉시키기 위해 “구도자에게 민감한 예배”(Seeker-sensitive Service)를 시작하였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대상을 염두에 두고 예배를 계획”하게 되었다. 위의 책, 283.
구도자 예배의 구성요소들은 음악, 설교, 간증, 드라마 등이었다. 말씀을 중심으로 예배는 모든 가능한 효과를 구도자들에게 전달해야 했기에 하나의 종합예술이라 할 정도로 예술적, 미학적 장치를 고려하게 되었다.
새들백교회는 구도자들이 예배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외형적 편리와 내면적 편안함까지 고려하고 있다. 외형적 편리는 주차장, 조명, 실내장식, 실내 온도, 화장실, 유아실, 교회 인상, 주보, 안내 등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쓰는 것을 말한다. 내면적 편안함은 구도자들이 교회에서 심리적으로 안정을 유지하며 분위기, 음악, 악기, 기대감, 격려, 일체감, 소생, 자유 등을 느끼게 하는 배려를 하고 있다. 여기에 문화적 세련미가 가미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몸을 깨움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깨우는 것이다.” 릭 워렌, 위의 책, 286-287.
윌로우크릭교회는 구도자들에게 복음 전도의 노력을 기울일 때 여러 가지 다양한 매체를 적극 활용한다. 이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창의적으로, 인상 깊게 그리고 성령님께서 감화하시는 방법으로 불신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빌 하이벨스, 위의 책, 318.
하이벨스목사는 복음의 내용을 변질시키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달하는 방식을 다양하게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는 문화예술적 매체들이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차원에서, 표면 아래 꽁꽁 얼어 있기 일쑤인 영적 갈망의 깊은 물을 녹이는 데 특별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위의 책, 3320.
V. 문화목회의 모델링
다음에 토의되는 9가지 사역은 문화목회를 실행해 나가는데 요구되는 기초적 과제라 하겠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 불어온 사회변동에 따라 교회의 역할, 교인의 훈련과 헌신, 복음전파 등의 기능이 변모를 보여왔다. 문화목회 모델링으로 소개되는 내용들은 어떤 부분은 이미 여러 교회에서 실행하고 있는 것이 많고, 어떤 부분은 아직 실행하지 않는 것도 있다. 주지해야 할 사항은 문화목회를 지향한다고 하여, 다음에 소개되는 방법을 모두 동원할 필요도 없고, 또한 동원할 수도 없다. 교회의 구성원과 특성, 역량, 그리고 지역에서 교회의 역할에 따라 필요한 방법을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실행해 나가면 좋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모델링의 범위는 방법론을 실행하기 위한 사역의 철학적 배경을 의미한다.
1. 목회사역
한국 교회를 성장시킨 요인 중 하나가 목회자의 리더십, 즉 전적인 헌신과 카리스마였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적 헌신과 카리스마는 각각 성경으로부터 그 기원을 갖고 있으면서 한국 교회를 세워나갔던 주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그러나 전적 헌신은 때로 목회자의 탈진현상을 가져왔고, 카리스마는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나면서 부정적으로 비쳐지기도 하였다. 한국 교회에 남아있는 가부장적인 목회스타일은 유교적 권위로 인하여 과도하게 강조되었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교회 성장과 관련하여 한국 교회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그동안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의 관계가 수직적 구조를 띄고 있었지만 이제는 쌍방향 시대를 맞이하여 수평적 구조를 이루게 된다. 더구나 셀목회, 소그룹목회 등으로 다양한 구조가 도입되는 관점에서 보면 목회사역의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성희 목사는 미래목회를 전망하는 가운데 “목회자의 권위에서 목회자의 지도력으로 전환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이성희, 위의 책, 244.
이 지도력은 먼저 “구태의연한 보스 목회를 청산”하고 “관계 중심의 리더십으로 전환”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성희, 『디지털 목회리더십』(서울: 규장, 2000), 60ff, 181ff.
문화목회는 교회 내의 다양한 소그룹들을 그리스도의 지체의식으로 네트워킹하면서 교회의 영적 성장과 부흥을 이루어가는 목회스타일을 지향하게 된다. 위의 책, “4부 구원과 윤리, 이렇게 조화시킨다. 25장, 나 홀로 목회에서 네트워크 목회로 전환하라.” 330ff.
2. 평신도사역
평신도 역시 한국 교회 안에서 인식의 변화, 구조의 변화라는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 점은 평신도의 위상의 변화라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한국 교회의 구조적 특성상, 예를 들면 가족적 관계의 구조로서 교역자는 부모의 위상을, 평신도는 자녀의 위상을 고유한 역할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결과 교회의 제도는 마치 권력 구조처럼 자리잡게 되고, 교역자는 상위에 위치하여 평신도에게 명령하고 지시하는 관행이 자연스레 수용되었다. 이 점은 평신도를 수동적이게 만들고, 자립하지 못하여, 교역자에게 의존하는 ‘성인아이’같은 폐단을 가져왔던 것이다. 또한 교회의 개혁을 시도하는 의식있는 평신도들은 교역자들을 마치 적의 개념으로 생각하여 교회내 갈등을 양산시킨 면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목회사역의 변화와 같이 평신도의 위상도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다시 말해 교회의 권력 구조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교회내 역할의 관점에서 평신도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신도는 더 이상 교역자와의 관계에서 상하 관계나 대립 관계가 아니라, 평신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위상에서 보아야 한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시대에 평신도는 목회사역의 조력자로서, 교역자의 동역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평신도들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하여 복음 전파와 복음의 생활화를 이루는 만인제사장과 청지기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이상근 외, 『한국교회 이대로 좋은가』(서울: 한국문서선교회, 1992), 223-236.
3. 예배
문화목회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전통적인 예배를 달리 변화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의 변화와 함께 교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내면 의식에 있어서 상당히 다양한 계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내면적 형성과 의식의 요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기존 예배의 형식에 접근시킨다는 것은 서로에게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불신자들과 교회로부터 멀어진 자들, 장기결석자들, 복음에 관해 관심있는 사람들을 하나의 유사한 그룹에 모두 통합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일 수 있다.
문화목회는 예배의 경우, 교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내면을 조사하여, 그들을 각기 영역에서 개발된 예배로 초청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그들 내면이 요구하는 복음의 전문 주제를 접맥시키면 그들 심령에 크게 호소력과 감동을 줄 수 있다. 불신자들에게는 구원과 회개를 주제로, 장기결석자들에게는 회복을 주제로, (구체적인 이유로) 낙심자들에게는 (구체적인 원인을) 극복할 수 있는 주제로(심리문제, 상처, 이혼, 가정불화, 경제적 궁핍 등등), 구도자들에게는 구원과 소망을 주제로 예배의 흐름을 주제에 맞게 구성한다면 예배를 통한 치유도 함께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현시대에는 교회 안에 존재하는 남녀노소의 차이가 문화적 차이로 인하여 서로 소외되는 경우도 있게 된다. 특히 인터넷과 사이버 공간에서 의사소통을 하는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 사이에는 특수한 문화적 차별성이 개제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도 “세대 중심에서 간 세대중심으로” 변화되어야 하며, 예배도 남녀노소의 특성에 따른 문화적 요소를 고려하고, “예전적 예배에서 축제적 예배로 전환”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성희, 『미래목회 대예언』, 44ff, 61ff.
그동안 구도자 예배, 열린 예배가 거론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4. 교육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교육은 주로 유아, 초등, 중, 고등학교에 이르는 주일학교 대상을 의미했다. 사회적으로 교육은 성인으로 확대되어 평생교육, 사회교육 등으로 심화되고 있는데, 교계에서는 아직 교육의 대상이 고착화 되어 있는 듯하다. 또한 교육자와 피교육자들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어서 교계에서는 아이들은 피교육자, 어른들은 교육자라고 이원화 되어 있다. 사회에서는 교육자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교육과정(사범대하고, 교육대학, 교직과정 이수자 등)을 이수해야 자격이 부여되는데, 교회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 문제는 문화목회를 거론하기 전에 각 교회가 갖추어야 할 교사 자격과 검증의 과정이 남아있다.
문화목회는 앞으로의 교회 교육이 주일학교 대상에게만이 아니라 성인에게까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쌍방향 교육방식을 활용함은 물론 미디어교육, 환경교육, 사회교육 등의 다양한 주제들이 성경과 기독교 세계관적으로 통합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교사들도 일방적인 교사위주의 교육을 반성하고, 피교육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복음을 적용시킬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교회에서의 교육이 진학과 점수에 제한을 받지 않는 만큼, 학교교육으로부터 받은 부담을 해소시키고, 복음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누리며, 창조적이고 자발적인 성품을 개발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를 응용한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인의 경우, 급변하는 사회 변화에 교인으로 적응하고 주도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능동적인 교육이 시도되어야 한다. 교회생활을 오래 할수록 한국 교회의 교인들은 사회 현실에 거리를 두게 되고, ‘교실교회’로 후퇴하는 성향을 보인다. 교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역사와 현실에 책임을 지는 건강하고 성숙한 교인으로 성장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5. 전도
예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전도하는 대상을 면밀히 조사, 연구하는 과정이 있어야겠다. 왜냐하면 전도의 대상자들도 나름대로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도의 대상자들은 교회를 반대하는 자에서부터, 호의적 불신자, 교회로부터 멀리 있는 자(Unchurched Person), 구도자(Seeker) 등으로 나뉠 수 있다. 구도자 예배, 열린 예배 등이 개발된 것처럼 전도에서도 다양한 계층에 대한 문화적 배려와 준비가 필요하다. “불신자에게 열린 교회가 성장한다”의 저자 G.G.헌터 3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사람들이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크고 확산된 장애물(우리가 지배할 수 있는 것)은 문화 장애물이다.” G.G.헌터 3세, 『불신자들에게 열린 교회가 성장한다』, 홍용표 역(서울: 서로사랑, 1999/2쇄), 104.
그는 D.맥가브란을 인용하면서 문화가 전도에서 갖는 중요한 입지에 관해 주장한다. “믿음과 제자도를 갖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들이 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것보다는 문화적이고 사회학적인 것”이다. 위의 책, 106.
문화목회는 전도에 있어서 불신자들의 입장을 너무 고려한 나머지 기존의 선포적 전도방법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포기의 의미가 아니라 죄인들을 얻기 위해 낮아지신 주의 성육신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헌터 3세는 결론적으로 문화목회적 의지를 이렇게 요약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가장 중심적인 진리 내용들을 아직 신약 성경의 렌즈들을 끼지 않은 사람들에게 의사 소통시켜, 그리스도교로의 회심을 위해 부분적으로는 그 렌즈들을 끼고 그 사람의 세계관 변화를 추구하는 것임을 알게 하라는 사명을 주신다.” 위의 책, 115.
6. 가정사역
현대 사회가 가져온 치명적인 병폐는 가정을 해체해 나가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경제적 변동과 사회 불안으로 교회 안의 가정들도 그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그동안 교세 확장 위주의 성장과 공격적 전도는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을 보살피지 못했다는 자성을 자아냈다. 교계와 사회 일각에서 거론된 상담, 복지, 케어 등의 개념은 문화목회와 만나서 가정세우기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된다. 현대 교회가 안고 있는 과제 중 하나는 교인들의 각 가족 구성원의 역할, 관계, 심리갈등 등을 말씀과 교육으로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다.
7. 사회사역
성경이 초대 교회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듯 교회는 지역사회와 지역 주민들과 같이 한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그들에게 칭송을 받게 되고 그 결과 교회가 부흥하게 된다(행 2:42-47). 성장하는 교회, 건강한 교회는 새들백교회와 윌로우크릭교회의 경우에서 나타나듯이 지역 사회를 끌어안을 때 가능했다. 그것은 교회의 공간을 개방하고, 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므로 먼저 가시화하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의 자세이다. 다시 말해 주 예수께서 보상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헌신으로 섬기신 것처럼 교회가 그런 자세를 실천한다면(약 2:17) 불신 상태에 있는 지역 주민들은 그 사랑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신앙과 예배공동체)를 존숭하게 될 것이다. 지역사회와 지역민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문화목회는 교회가 그 지역에서 생활공동체로서 지역의 정신적, 실제적 중심이 되도록 방향전환을 시도해 줄 것이다.
8. 문화예술사역
위에서도 언급한대로 그동안 교계는 주지주의적 신앙운동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유교적 전통으로 예술을 하위에 처한 기술로 보는 사회에서는 교회에서도 예술 활용이 활발하지 못했다. 또한 경건을 유지해야 한다는 신앙심은 교회에 예술을 도입하는 문제를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교회는 문화적인 창조성을 잃어가고, 청소년과 같이 문화예술에 민감한 세대를 빼앗기는 시대를 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교계도 이제는 그러한 사고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의식에 이르렀고, 찬양, 교제, 전도, 영성을 개발하는 방법으로 문화예술을 재발견하게 된 것이다. 문화예술은 개인에게는 물론, 소그룹에 활력을 주고, 교회 전체에 영적 역동성을 줄 수 있는 도구이므로 이를 개발하여 훈련하는 일은 더욱 활성화 해야할 것이다.
9. 에큐메니칼사역
그동안 한국 교회는 교단간, 교파간 대화가 부족하였다. 그 원인으로서는 교단지도부 간의 갈등과 신학 노선으로 인한 것이 많았다. 문화목회를 활용하게 되면, 교회 활동이 교단지도부의 권력과 이익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소그룹 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되어, 자연히 교제가 늘어나게 된다. 이는 서로 다른 교단 산하에 있는 개교회들이 유사한 소그룹으로 대회를 갖는다든지, 소그룹 리더들을 교환한다는지, 소그룹 연합활동을 하게 된다면 대화와 협력은 활력을 띄게 될 것이다. 지난 시간에는 교단의 구조를 통합하고, 교단이 추구하는 신학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을 시도했다면, 앞으로는 지체들의 문화적 활동을 통하여 분리된 그리스도의 몸을 하나되게 하는 시도를 해야 한다.
문화목회 방법론(사회변화와 교회의 문화적 대안)
분 류
구 체 적 사 역
기 대 효 과
1. 목 회
지역중심 목회, 문화목회,
Cultural Ministry, 복음의 사회 적용
2. 교회형태
지역사회와 연관, 문화교회,
전원교회, 도농연결, 자매결연
신앙-, 예배-, 교육-, 전도-,
생활공동체, 문화공동체로서의 교회
도시, 농어촌 교회 연계, 주5일근무제
3. 평신도
사 역
교사, 소그룹 리더, 찬양대 지도자,
중보기도, 상담, 문화사역자
제자훈련, 성경대학, 기독교세계관
성경공부 심화과정
다양한 사역을 위한 훈련
문화복지사(문화컨텐츠 개발, 적용)
4. 예 배
열린 예배, 구도자예배,
청소년, 노년, 직장인, 다양한 예배개발
불신자, 낙심자, 초신자들을 위한 예배
각 계층의 특성을 참고
5. 전 도
문화를 고려하여 각종 방법 개발
전도대상자의 문화적 접촉점을 참고
6. 영성훈련
특별주제 성경공부, 기도회, 묵상, 침묵기도, 금식, 거룩한 독서, 노동과 기도 등
영성, 신앙인의 내적 성숙을 훈련
7. 가 정
부모, 자녀, 부부, 결혼준비,
고령화문제, 가족캠프, 노인케어
가정세우기, 가정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구체적 활동, 아버지 학교, 고부간 갈등해소,
8. 지역사회
지역사회 발전프로그램 개발
주민의 참여유도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사역개발, 교회건물 개방,
소년소녀가장, 장학금, 무료급식, 이동목욕,
사랑의 도시락,
9. 사회봉사
지역봉사, 고아원, 양로원, 장애시설,
호스피스
이웃사랑실천, 노력봉사/품앗이 운동
사랑의 집짓기 운동,
10. 청소년
대안학교, 청소년문화센터
대안문화와 비전을 제시, 공부방, 방과후 지도,
세대간의 격차 해소, 충효, 예절학교
11. 상 담
각종 상담: 신앙, 심리, 진로, 취업, 결혼 등
다기능적 사회에서 신앙인의 구체적 생활 지원
12. 세미나
가정, 결혼, 건강, 법률, 경제, 신앙, 기타 전문지식을 활용한 세미나 등
교인들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
13.
문화강좌
교양강좌, 컴퓨터, 외국어, 꽃꽂이, 만들기, 좋은 노래 등
교인과 주민의 교양을 고취, 만남의 기회를 통한 전도의 효율성 기대
14.
문화생산
창작: 문학, 음악, 미술 등 문화예술, 기독교예술 증진
예술성, 문화컨텐츠 개발
15. 동아리
축구, 테니스, 볼링, 골프, 등산 등 스포츠, 기타 취미
신앙생활, 교제, 건강에 도움을 줌
16. 순 례
국내 기독교 유적 탐방, 국내외 교회탐방
성지순례(이스라엘, 소아시아, 종교개혁)
기독교 역사를 통해 신앙교육
기독교 유적지 역사와 지도, 모델적 교회 탐방
17.
에큐메니칼
교리논쟁과 갈등을 문화행위로 교회연합
초교파적 문화이벤트를 통해 화합을 모색,
전국복음송대회, 전국교회체육대회 등
VI. 맺는 말
1. 문화목회의 한계
위에서 논의한 문화목회에 대한 인상은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반드시 적용해야 할, 또는 모든 교회가 모델로 해야할 교회성장 방법론처럼 들렸는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모델이 되는 두 교회를 소개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혹 그런 인상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연구의 맺는 부분에서 분명히 해야하는 점은 문화목회는 기존 목회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보완하고,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며, 하나의 대안적 방법이라는 것이다. 문화목회가 새 시대에 맞는 전적으로 새로운 방법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열린 예배나 구도자 예배에 관한 비판이 지적하듯이 문화목회에서도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워렌목사의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프로그램으로 교회를 성장시키려고 하지 말고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키우는 일에 주력하라.” 릭 워렌, 위의 책, 126.
하이벨스목사도 문화목회를 적용할 때 두 가지 갈등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것은 문화목회의 방법론과 복음의 약화 사이에 존재했던 질문이었다. 윌로우크릭교회의 문화목회의 고뇌는 다음 두 가지 질문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교회가 교리적인 순수성을 유지하면서도 문화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지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342)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현대적인 예술과 언어를 사용하다 보면 복음의 내용이 약간 변질되는 게 아닐까?”(375)
그는 문화목회를 적용하는 동안 “그저 사람들의 눈과 귀만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빌 하이벨스, 위의 책, 320.
문화목회가 성경적 독특성을 잃어버린다면 기독교적인 ‘오프라 윈프리 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질 것이다. 위의 책, 343.
그의 문화목회는 분명한 기준이 있었다. “지나치게 번지르르한 프로그램과 모든 것을 말쑥하게 해내려는 유혹을 경계하라.” 위의 책, 339.
말씀 선포가 항상 중심에 있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2. 전망
현대 사회는 급격한 변화의 물결 속에 서 있다. 그러한 요소들이 때로는 위기로, 때로는 기회로 나타나는 것은 각 교회가 이 변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성경적이며 복음적인 자세로 활용하는가 하는 데에 달려있다고 본다.
니버의 문화유형에서 보인 것처럼, 기독교는 사회에 대하여 적극적이며 창의적인 문화인식을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 문화변혁자로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사회에 접맥시키는 것은 교회의 책임이자 본분이다. 이를 위해 교회와 교인들은 소극적 자세를 벗어버리고 문화목회라는 개념을 다시 확인하며 목회와 전도 현장에 활용해야 할 것이다.
21세기는 인간의 감성을 사회 각 영역에 더 많이 등장시킬 것이다. 현대인들은 극단적인 개인주의 속에서도 사랑과 연합에 갈증을 느끼게 될 것이며, 구도자의 상태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이들에게 복음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는 역시 현대인의 심성을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새들백교회나 윌로우크릭교회는 이 면을 어느 교회보다 실감하고 문화목회적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교회성장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세계교회사에 기록하고 있다.
문화목회는 결코 새로운 방법이 아니다. 문화목회가 추구하는 목회적 의미는 이미 사도행전 2장 42-47절에 기록된 초대교회 모습에 나타나고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44절),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45절) 한 행동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물질적인 소통뿐 아니라, 문화적인 소통이 함께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앙인들의 삶에서 보여준 문화적인 소통이란 삶의 표현, 내적 욕구, 가치관 등이 함께 나누어졌다는 것이다. 문화목회의 원형적 모델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현대 사회가 쌍방향 의사소통(Interactive Communication)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교회와 교인들은 사회와 비교인들에 대한 과거의 일방향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극복해야 한다. 문화목회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허락하신 복음의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 교계는 앞으로 전개되는 문화의 시대에 문화목회의 장점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여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아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 하게 하시는 은혜’를 입어야 할 것이다(행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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