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피랍 사태 석방에 즈음하여
지난 7월 19일 아프간에서 봉사활동 중이던 한국인 23명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인 탈레반에 의하여 납치된 후, 40여 일만에 석방되면서 한국교회에 여러 가지 아픔과 교훈을 남겼다.
우선은 탈레반에 의하여 무참하게 희생된 두 분의 죽음에 대하여 안타까움과 함께, 유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를 바란다. 또 인질로 잡혀 고생하다 풀려난 사람들을 따뜻하게 환영하며, 고국과 가족의 품에 안겨, 사회에서도 별 탈 없이 적응해 나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들의 석방을 위해서 염려하고 기원한 모든 국민들에게 깊이 감사하며, 정부 당국자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교회 구성원들로 인하여 국가와 국민들에게 어려움을 주게 된 데 대하여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하여 교회 입장에서 정리하고 생각할 것도 있다. 첫째는 해외 봉사와 활동에 대한 교회 내부의 대대적인 점검이 있어야 하겠다. 이미 8월 30일 교계에서는 한국교회가 ‘세계연합봉사기구’와 ‘선교사위기관리기구’를 만들기로 합의하였다. 한국교회는 더 한층 중지(衆智)를 모아 치밀하고도 효율적인 해외에서의 활동에 대한 적절한 기준과 협력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는 ‘선한 가치’의 훼손이 없어야 한다. 이번에 한국인들은 봉사활동 중 아프간 무장 세력에게 납치되었다. 그런데 일부 여론은 ‘정부에서 가지 말라는 곳을 갔으니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표현을 하고 있다. 물론 봉사단이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것은 사실이지만, 선한 목적의 봉사 활동까지 폄훼하고 인명이 경각에 달렸는데도 조롱하는 태도는 옳지 못했다.
셋째는 정부가 인질들을 석방시키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한 것은 사실이나, 선교에 대한 금지 언급은 성급한 부분이 있다. 이번에 정부는 탈레반과 협상하면서 ‘선교사 철수’라고 하는 제안을 수용하였다. 피랍자들과 가족들을 고려한 어려운 결정이었겠지만, 이는 자칫하면 ‘종교를 통제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넷째는 교회와 피랍자들에 대한 ‘구상권(求償權)’문제이다. 정부에서는 피랍자들이 모두 고국에 돌아오기도 전에, ‘책임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였다. 피랍자들을 석방시키기 위하여 국가의 비용이 들어갔겠지만, 국민의 생명을 위하여 지출한 것이므로, 구상권은 적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국가는 국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닌가?
다섯째는 이슬람권에서 ‘종교상호주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아프간에 나갔던 사람들은 분명히 봉사활동을 위하여 나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국내의 어떤 네티즌이 이들이 ‘선교 목적으로 나갔다’고 메일을 탈레반에 보낸 후, 그들은 봉사단의 리더였던 고 배형규 목사를 무참하게 살해하였다.
지금 이슬람 세계에서는 한국을 이슬람화 하기 위한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는 상호 선교와 포교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하고, 특정 종교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 그런데 이번 아프간에서의 사태를 보면, 타종교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의 배타성을 엿볼 수 있다.
이번에 아프간에서 발생한 봉사단 피랍 사건은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였다. 종교 활동과 국제적 관계, 교회의 해외 활동에 대한 점검, 국가의 재외국민에 대한 위기 대처능력, 국가 상호간의 외교적 협력, 위기를 만난 국민에 대한 다수 국민들의 태도, 언론의 오보 사태 등 다양한 모습들이 우리사회 속에서 표출되었다.
그러나 기독교계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반성과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즉, 교회내의 의견 수렴과 함께, 교회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을 인지해야 한다. 이번 아프간 피랍사건으로 교회에 대한 비난이 고조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지혜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교회는 무참하게 희생된 두 분과 21명 석방자들의 희생과 아픔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