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59주년에 즈음하여
친일청산 어떻게 할 것인가
최근 사회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에 대한 <친일청산>과 관련하여 기독교계에서도 친일행위를 한 지도자에 대하여 비판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우리 근대사에서 일제에게 침략을 당한 것은 분명 아픈 과거이다.
일제강점시대 고달픈 삶을 살았던 선조들의 고통과 민족정신마저 말살하려는 일제의 간악한 흉계 앞에 항거하다 형극의 고초를 겪은 조상들의 의기를 우리는 흠모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제의 흉계에 항거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영달을 추구했던 일부 지도자의 반민족 행위도 규탄한다. 이제 <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에 의해 친일 행위자에 대하여 조사하려는 것은 크게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
선조들의 친일행위를 밝혀 반민족 행위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를 교훈 삼자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60여년이 지난 지금 당사자들이 대부분 고인이 된 상황에서 정확한 반성과 효과에 대해서는 미지수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오히려 과거지향적 담론으로 흘러 국론분열과 그 후손들에게 ‘연좌제’적인 굴레를 강요하지는 않는지 신중히 살펴볼 일이다.
또한 이와 편승하여 기독교계에서 일고 있는 “친일고발”도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제시대 교회 일부 지도자들의 문제는 ‘신사참배’ ‘동방요배’와 같은 교리적 잘못과 ‘침략전쟁지지’ 등과 같은 윤리적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의 잘못된 행위는 비난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처절하게 순교한 자랑스런 지도자들처럼 되지 못했다 해서, 기독교계가 나서서 “친일행위”를 한 지도자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도 몇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일부 교회 지도자의 친일행위가 민족수난의 고통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제는 갖은 방법으로 민족을 말살하려는 정책을 펴 왔고 기독교계도 여기에서 예외일수 없었다. 당시 지도자들의 고뇌와 갈등을 단순히 죄악시한다 해서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고 본다. 그러므로 정죄가 아닌 용서로 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둘째는 이러한 비난이 기독교가 민족종교로 발돋움하는데 과연 도움이 되느냐하는 것이다. 당시의 지도자는 모두 고인이 되었다. 비판이 가해지고 친일행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이에 대하여 반성하고 뉘우칠 당사자는 없다. 교회는 과거, 당시의 일부 지도자에 대한 때늦은 비난으로 스스로를 두 번 부끄럽게 할 필요가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셋째는 사회적 현상에 편승하여 흑백논리에 의하여 뒷공론으로 과거의 지도자를 비판하는 것은 신중해야한다. 과거를 비판하기 위하여 자신은 얼마나 기도하였는가 기도 없는 비난만 일삼는다고 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넷째는 균형 잡힌 평가를 하여야한다. 교회는 일제시대 친일행위만 한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과 민족정신을 지키고 한글을 지키고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종교로 활약했음도 알아야한다. 공과를 바로 평가하여야 한다.
기독교계는 섣부르게 사회적 현상처럼, 과거의 문제점을 들춰내어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역사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용서와 화합으로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며, 지금 개인의 바른 삶과 매일의 자기 성찰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모습이 이 사회에 투영되도록 해야 하며 이제는 교회가 국가와 민족의 희망임을 알리는데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