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판치는 세상, 언론의 책임
최근 우리 사회는 귀신이 판치는 세상이 된 듯한 느낌이다. TV드라마, 영화, 게임, 광고, 만화, 오락 프로그램, 인터넷 등 다양하고도 폭넓게, 문화 전반에 총체적으로 귀신이 등장하는 기형적이고 병리적 현상들이 다반사로 나타나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또 최근에는 귀신의 캐릭터를 친밀감(?)있게 묘사하는 등 귀신문화 전달방법도 다양화 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OECD 가입국가 중, 최근 10년간 자살률 증가 1위, 가정파괴 급증, 이유 없는 폭력의 난무 등 사회가 역기능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데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 무분별한 귀신문화의 등장은 또 다른 사회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데 염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굴절된 사회현상 뒤에는 귀신을 아무 비판 없이 등장시키는 문화의 오염에서 그 원인이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문화 사역자인 신상언 씨는 ‘문화에는 메시지와 메타포, 이미지가 있다. 그것들은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다. 세계관이 온전치 않은데 삶이 온전할 리가 없다’ 또 ‘귀신들린 자, 귀신들린 자의 문화, 귀신 들린 자들의 문화가 뿜어내는 광기와 독기가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사람들이 귀신문화를 공공연히 퍼뜨리는 것은 귀신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며, 귀신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람들의 삶이 온전할 리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이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저속한 귀신 문화가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TV에서의 무속드라마와 귀신을 소재로 한 오락 프로그램, 신문의 점술․무속광고와 무속인 소개 기사, 영화 상영관의 귀신과 관련한 영화프로그램, 인터넷상에서의 사악한 이미지의 귀신이 등장하는 게임 등은 악한 문화가 마치 우리 생활과 밀접하고 필요한 관계라도 되는 듯 오해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한 예로 최근 TV드라마 가운데 MBC가 방영하고 있는 <왕꽃선녀님>은 시청률 20%대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 드라마의 대본을 쓴 작가가 신(귀신)내림에 대한 소재의 문제성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무속(무녀)은 토속, 토착적이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귀신에 의한 신 내림과 같은 소재는 일반적이거나 흔히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또 무속이나 무녀이야기가 가족이 함께 시청하는 시간대에 편하게 등장할 정도의 건강한 이야기는 더욱 아니다. 따라서 작가나 방송국에서 작품의 소재에 대한 일반적․보편적 가치추구를 외면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가의 견해와 의식이 이러한 저속한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일부 신문의 무차별적인 무속․점술광고에 대해서도 언론사의 인식이 문제이다. 신문윤리위원회의 독자불만처리 보고에 대한 ‘언론사 의견표명 요지’에서 몇몇 신문들은 ‘점술․무속광고가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 고유의 토착문화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통문화는 귀신놀음에 얽매이는 유약함이나 귀신에게 운명을 맡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저급한 상업성 때문에 토착문화라는 이름으로 귀신문화를 포장하여, 독자를 현혹하는 광고를 내고 있는 신문사의 양식은 수준이하이며, 귀신에게 자신의 운명에 대한 방향과 평가를 맡기고 산다는 것도 운명론적 기계적 인간관으로 고착시키는 것의 다름이 아니기에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문화는 시대를 반영한다. 귀신이 판치고 그 문화가 판치는 시대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아무리 문화가 다양화되고 그 소재의 실험성을 추구하고 있다 할지라도 귀신이 아무 때나, 어디서나 출몰하는 문화의 소재로는 적합하지 않다. 귀신은 결코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갈 수 없는 것으로, 인간에게 정신적․문화적 해악을 뿜어대는 독기를 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실 우리 사회에 이와 같은 귀신문화의 창궐은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라는 이름으로 응원한 이후에 자연스럽게 퍼지는 양상이 심화되었다. ‘악마’라는 이름은 어떤 경우에도 미화되거나 애칭으로 사용될 수 없음에도 우리 사회는 악한 문화에 함몰된 것이다. 악마나 귀신은 정상적이고, 선한 의미와는 정반대되는 개념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차제에, 악한 문화를 양산하는 주체들과 이것들의 전파․매개 역할을 하고 있는 언론들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시대와 국민들의 정신적 황폐화를 더 이상 초래하지 않도록 각성해야 한다. 또 교회는 건전한 문화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감시자와 건강한 문화 창달에 견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